아주 오래간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늦은 약속이 끝난 친구를 만나 함께 집으로 갈 생각으로 상행선 막차에 몸을 실었다. 평일 마지막 열차여서 그런지 객실 내부는 한산했다. 자동으로 배정된 좌석은 유리창 한가운데 자리였는데, 앞뒤 좌석 모두 비어 있는 덕분에 블라인드를 활짝 열고 창밖을 구경했다. 대학생일 땐 한 달에 서너 번씩 오르내렸던 적도 있었는데. 괜히 들뜨고, 동시에 긴장됐다.
누군가는 떠나오고, 누군가는 떠나가는 역까지 마중 나온 친구를 만나 역 앞 승강장으로 나갔다.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금요일 자정이 넘은 시간에 택시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길에서 1시간 넘는 시간을 버티고 견뎌내어 어렵사리 친구 집에 도착했다.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봤다. 마이너한 감성과 감독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영화로 서사는 예상한 대로 적당히 흘러가다가도 한 번씩 튕겨나가며 발칙했다.
여행의 목적은 단 두 가지. 사람 만나기와 새로운 것 보기를 수행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고위도의 서울은 조금 나으리라 생각했지만 한여름의 더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외출을 했다 하면 금세 땀에 젖었다. 워터파크나 흠뻑쇼는 안 가도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도 힘껏 사람들을 만나 떠들고, 먹고, 웃었다. 나의 여행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아, 그리고 수년만에 노래방엘 가 노래도 실컷(비록 순식간에 목이 뒤집혔지만) 불렀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면! 우니크림파스타와 인생 처음 먹어보는 트러플감자뇨끼 단 두 가지의 여행 목표 중, 새로운 것 보기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몇 년을 유학하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새로운 시도에 야박하고 보수적이었던 과거의 내가 한심해졌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정원의 연못과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박물관 건물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멀리 남산타워도 보였고, 그 틈으로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멀리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보였다. 안내 리플릿을 펼치자 시대별로 지나가며 볼 수 있는 동선과 놓치지 말고 보고 지나가야 할 유물들의 사진이 정리돼있었다. 큐레이션 맛집, 국사책의 실사판이랄까. 나는 그중에서 사랑스러운 호랑이(이런 호랑이라면 함께 살 수도 있을 것 같다!)와 반가사유상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석가는 니르바나에 이른 듯 평안한 표정이었는데, 안녕을 찾고자 했던 나는 도저히 안녕에 이를 수 없을 것 같단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하루는 박물관에서, 마지막 하루는 현대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여도 괜찮았겠지만, 오래간만에 상경한 촌사람을 반겨주는 친구와 함께 난해의 숲을… 떠돌았다.
언젠간 이 낯섦도 내 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음음. 마감을 1시간 남짓 남겨둔 블루보틀에서 마셨던 블루베리 피즈도, 북악산 풍경도. 주고받았던 안부들도 전부 마뜩했다. 면접 결과를 기다리며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얄팍한 기대와 함께였던 서울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