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의 발견 : 겹벚꽃
지난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댔다. 마감이 임박하여 주문을 취소하는 집, 전화를 받지 않는 집…. 세 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에야 전기구이 통닭집을 찾아냈다. 제주도의 마농치킨이 생각나 제주행을 고민하던 요즘, 마늘통닭이라는 메뉴에 꽂혀 주저 없이 주문했다.
포장 주문한 통닭을 찾았고, 집으로 돌아와 어느 가장처럼 냉장고에 잠들어있던 맥주와 소주를 깨워 식탁 앞으로 불렀다. 봉투를 열자 마늘 향기가 튀김 냄새에 섞여 기쁘게 터져 나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소맥을 조제하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마늘이 덜 익었는지 입이 아렸다. 티브이 영화채널에는 <악마를 보았다>가 재방영되고 있었다.
늦게 먹은 야식과 술 때문에 깨어나기가 힘들었다. 느지막이 눈을 떠 대강 끼니를 때우고 창밖을 보자 외출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자'가 아닌 '어디로든 가자'라고 마음먹고 걸음을 뗐다. 술기운에 썼던 편지를 부치고, 예전 단골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했다. 오후의 볕은 따뜻하다 못해 덥기까지 하여 그늘을 찾아 솔밭으로, 강가로 움직였다. 바람이 꽤 세게 불었는데도 봄 낮의 온도가 포근했기에 바람도 포근했다. 늦봄의 봄바람이었다.
강변에 서니 반대편 강둑이 보였다. 물 빠진 수중보를 타고 건너 '나무'라 부르는 곳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있는 기찻길에는 간간이 기차가 지나갔다. 역시 KTX는 무궁화호보다 조용했다. 나무 아래에는 노인 두 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있던 과거의 나와 당신을 생각하면서 그곳을 지나쳤다. 아주 잠깐 오랫동안 머물렀다.
둑 아래에는 피난민들이 정착해서 터를 잡은 마을이 있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 고양이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동네 개들과 산책하시는 노인들,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을 봤다. 벤치 옆 벚나무는 내 위로 져버린 꽃대궁인지 이파리인지를 계속 떨어뜨렸다.
해가 낮아질 때 즈음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를 건너 다시 섬(하중도)으로 돌아왔다. 평소엔 잘 가지 않는 강둑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벚꽃은 꽃을 활짝 피우고, 흩날리고, 더 푸르러졌다. 바람에 벚나무의 이파리들이 하늘거렸다. 섬 둘레를 반 바퀴 정도 돌아 집에 가까워졌을 때 멀리 초록 가운데 붉게 꽃을 틔운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겹벚나무였다.
다 진 벚나무의 초록의 틈, 겹벚꽃의 빛은 더 뚜렷하게 도드라졌다. 밀양에는 겹벚꽃이 없는 줄만 알았는데, 가로수를 식재하던 중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 딱 한 그루의 겹벚나무가 벚나무 사이에 피어 있었다. 나는 그 아래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낮아지는 빛에 얼굴을 달리하는 겹벚꽃들. 몽실몽실한 구름 같기도 하고, 후 불면 날아가는 홀씨를 남기는 민들레 같기도 했다. 이파리는 그저 그런 초록이 아니라, 붉은빛을 삼킨 올리브그린 색이었다. 올려다보느라 목과 허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집에 다시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때가 한참 지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