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공룡, 등불
내 모든 여행의 날씨는 좋았다. 맑아서 좋았다가 아닌 그저 마음에 들었다가 정확한 표현일까(여행을 시작하면 구름과 비도 로맨틱해졌으므로). 출국 수속 후에 공항에서 열었던 플라스틱 소주병의 짜릿함 만큼이나 새롭게 도착한 곳에는 짜릿하게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도로 옆의 설경, 하얀 지붕, 멀리 보이는 맑음의 파편들. 눈이 귀한 나가사키시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룡, 중국풍의 등불 축제, 그걸 보고 있는 한국인까지 평행우주가 잘못 엮여버린 순간 같았다. 상온에도 눈이 내릴 수 있는 이유를 잠깐 생각하면서 우연의 세계의 나는 금세 기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