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숲 속, 호숫가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던 그의 소원도 이뤘다. 추워서 잠옷에 가운을 걸치고 나가는 건 마다했지만 지난밤 동안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데크 위 쌓인 눈을 조심스럽게 밟고 섬이 많은 호수 가운데 섰다. 이틀 사이 두 개의 꿈을 이루고 나니 꿈을 이루는 일이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이상을 목도하는 게 꿈이라고 한다면(구체적으로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이 설령 미완의 형태로 실현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타협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뚜렷하지 않은 꿈들이 우연히 이뤄지기도 했다.
첫날 폭설과 해일로 가지 못했던 오타루로 향하는 길은 순조로웠다. 가고자 했던 식당은 방송 촬영을 이유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다른 가까운 곳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오르골 소리를 실컷 듣고, 운하를 걷고, 삿포로로 돌아가는 기차도 잰걸음으로 움직여 제때 탔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슬슬 피로가 몰려왔지만,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 우리는 현지 직장인들이 모이는 이자카야를 찾아갔다. 안 먹어본 메뉴로만 구성된 최후의 만찬에 제법 힘이 났다.
숙소로 돌아와 몸을 씻고 짐을 챙기고 나니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던 바람이,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만족으로 바뀌었다. 아쉽기만 할 줄 알았던 걱정도 우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