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에서 하나로 그리고 둘로....
이제 우리는 서로의 ‘남편’, ‘아내’라는 이름에 ‘엄마’, ‘아빠’라는 새로운 이름이 더해졌다.
처음 아기를 품에 안았던 그날, 기쁨보다도 두려움이 더 컸다.
너무 작고 연약해서, 혹여 숨결 하나라도 놓칠까 봐 조심스레 품에 안아야 했다.
열이 오르면 잠든 아이를 둘러업고 밤새 병원으로 달려가던 그녀.
무엇보다도 아이가 아픈 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부모’란 말이, 참 따뜻하고도 무거운 이름이란 걸 우리는 매일의 밤을 지나며 조금씩 배워갔다.
우리의 하루는
아이의 숨결로 시작되어 아이의 미소로 마무리되었고, 때론 지치고 속상해도 아이의 조그마한 손이 손가락을 꼭 쥐는 순간 모든 게 용서되는 듯했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엄마, 아빠로 만들어 주었다.
아이의 배밀이, 뒤집기, 그리고 삐걱거리는 첫걸음마.
그 모든 순간이 우리 부부에겐 작은 기적이었고 처음으로 쌓아가는 추억이었다.
엄마라는 말, 아빠라는 말.
그 조그만 입술에서 처음 흘러나왔을 때, 우리는 서로를 보며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언제였더라.
아마 내 생일이었던 것 같다.
야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이른 새벽 집 안 불빛이 켜져 있었다.
그녀와 아이가 작은 상에 초 하나 켜놓은 케이크를 올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를 대신해 스케치북에 큼지막하게 적힌 글귀.
“아빠 생일축하해요!!”
이보다 더 완벽한 축하는 없었다.
기쁨, 감사함, 사랑.
그 모든 감정이 그 조그마한 종이 한 장에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해 생일마다 그 스케치북을 떠올린다.
아빠라는 이름을 처음 선물 받은 날로.
우리 아이는 천재인 줄 알았다. 벽에 붙여놓은 한글 단어들을 척척 읽는 모습에 아내와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우리 천재를 낳았구나!”
서로 눈을 맞추며 웃곤 했어.
그러던 중,
들려온 둘째 임신 소식.
기쁘고 설레는 소식이었지만, 그 날 이후 첫째 아이의 심술보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드러눕고, 계속 안아달라고 조르는 아이.
늘 순둥순둥하던 그 아이가 어느새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더 힘들었던 건 아내였을꺼다.
입덧이 유독 심해서 밥 한 술 뜨기도 힘겨운 날들.
그런데도 아이의 이유식은 챙겨야 했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하루를 버텨야 했어.
어른들이 말씀 하셨다.
“첫째가 아기를 시샘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이 어린아이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의 존재를…’
아마도,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 달라진 공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작은 어깨에 ‘언니’라는 이름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던 시간.
그렇게 우리 첫째도 조금씩, 천천히, 언니가 되어가는 연습을 시작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