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딱지와 일기장

막내고모와 할머니의 추억사진

by 미련곰탱이

유년 시절, 막내 고모는 내 세상이었다.
가장 만만했고, 가장 자주 혼났고, 가장 많이 웃었던 사람.
내가 아무리 생떼를 부려도, 결국 나를 안고 가야만 했던 사람.

고모가 친구를 만나러 나가려 하면 나는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나도 갈 거야!"
고모는 매번 나를 떼어놓으려 애썼지만, 할머니는 항상 내 편이었다.
"그냥 데리고 가라~ 어차피 네가 져!"
결국 고모는 한숨을 쉬며 내 손을 잡고 나섰다.

어느 날, 고모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엄마랑 어디 가니?”
고모는 깜짝 놀라 “아니에요, 아들이 아니라 조카예요!” 하려던 찰나—
나는 천연덕스럽게 고모를 쳐다보며 한 마디,
"엄마!"

그 말에 고모는 기가 막혀 한참을 웃었고,
집에 와선 얼굴을 붉히며 “내가 얘 때문에 미치겠어~” 했었다.

그로부터 오래 지나 어느 날,
우연히 고모의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다.
고운 글씨로 빼곡히 적힌 일기 속에
내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놈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 말썽꾸러기다. 그래도, 웃긴다.”

나는 그때 알았다.
고모는 내게 단 한 번도 화가 난 적이 없었구나.
그 모든 한숨과 꾸중도 사랑이었구나.


고모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결혼을 하셨다.
그날,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결혼식장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그 눈물이 부끄럽지 않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고모가 너무 예뻤고, 너무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마치 ‘내 사람’을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고모부가 너무 미웠다.
혹시 고모를 괴롭히면 어떡하지?
드라마에서처럼 소리 지르고 폭력적이면 어떡하지?
아직 어렸지만, 어설픈 상상 속에서 고모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내 고모 데려가지 마요."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고모의 결혼을 받아들이기까지, 어린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누가 내 고모를 데려간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도 결혼식이라는 건, 그전부터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고모의 함은 결혼 전, 가운데 고모 집에서 받았다.
탐탁지 않게 느껴졌던 고모의 결혼이었지만, “함이 들어온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들썩였다.

해가 저물 무렵,
멀리서 들려오는 “함 사세요~~”
그 소리는 마치 동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 같았다.
어른들은 우르르 내려가 봉투를 건네며 함진아비를 재촉했다.
“자자, 얼른 들어와~”
하지만 함을 든 고모부의 친구들은 마치 대장부라도 된 듯 버티고 또 버텼다.
그 모습이 어린 눈엔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집 안에는 이미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명절보다도 더 많은 음식, 웃음소리, 그리고 사람들.
어른들은 건배를 외치고, 꼬마들은 노래를 시키고.
그 왁자지껄한 틈에서 나는 한동안 고모의 결혼을 잊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그날 밤, 나는 잔치의 열기 속에서 고모의 결혼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고모가 방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고모는 그렇게 한 남자를 만나 우리 집을 떠났고,
나는 한동안 고모의 빈자리가 너무 그리웠었다.


할머니, 나의 세상

나에게 할머니는 부모님 이상이었다.
시장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시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나를 돌봐주신 분, 나의 주양육자이자 세상이었던 분.

어린 시절, 나는 늘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할머니 품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나는 종종,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할머니 돌아가시면 나도 무덤에 따라 들어갈 거야"라며 울먹였던 기억도 있다.
그건 어린 마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진심 어린 사랑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한없이 인자하셨고, 늘 내 편이었다.
동생과 똑같은 과자를 나눠주시면서도 “오빠니까 조금 더 먹어야지” 하며 한 줌 더 덜어 내 봉지 안에 넣어주시던 할머니.
자다가도 "할머니, 물~" 하면 말없이 일어나 물을 따라주셨고,
밥을 먹을 때면 내가 숟가락으로 밥을 뜨는 순간, 언제나 반찬을 하나 올려주시던 분.

할머니는 내 인생의 든든한 방패막이기도 했다.
아빠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 일도, 할머니한테 살짝 얘기하면 어느새 가능해졌고, 아빠에게 혼나는 날이면 난 항상 할머니 등 뒤로 쏙 숨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할머니 등 뒤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가장 안전한 성이었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께 도무지 잘못할 수 없는 나이에도 나는 참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가운데 고모부는 은행 지점장님이셨고, 늘 깨끗한 신권을 용돈으로 챙겨주곤 하셨다.
할머니는 그 귀한 돈을 아까워 장롱 깊숙이 숨겨두셨는데, 그게 나에겐 마치 비밀창고처럼 느껴졌다.
호기심과 욕심이 섞인 어린 마음은 그 돈을 가랑비에 옷 젖듯 한 장, 두 장 꺼내 쓰기 시작했고 결국 들켜서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할머니의 그 실망한 표정과,
아빠의 단호한 꾸중이 아직도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게 할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없이 인자하고, 한없이 나를 감싸주었던 할머니.
그 따뜻한 존재는 지금도 내 마음속 가장 아늑한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특별한 추억은 내가 대학생이 된 어느 날, 단둘이 다녀온 속초 여행이었다.

멀리까지 함께 나간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 하루하루가 할머니께도 특별했던 것 같다.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시던 모습,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짝 들뜨셨던 그 미소.
할머니는 길을 걷다 말고 “배고프다, 밥 먹자” 하셨고 우리가 간단히 시켜 먹은 몇 가지 반찬에도 "참 맛있다"며 연신 흡족해하셨다.
나는 그날의 밥상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식사였다고 기억한다.

속초 여행의 어느 오후,
할머니와 바닷가를 걷다가 할머니가 조용히 내 손을 잡으셨다.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다녔는데, 그날은 반대로 할머니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으셨다.

그 마른 손,
쭈글쭈글하고 앙상한 손가락 사이로 불현듯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손은 나를 먹이고, 입히고, 안아주고, 때론 업고, 품고, 기다려 주셨던 손인데…
나는 그 손이 언제부터 그렇게 마른 줄도,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컸구나 싶었다.

어릴 적엔 그 손이 너무 크고 든든해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이젠 그 손이 너무 가볍고 작아 마음이 아려왔다.

깡마른 손등을 어루만지며 문득 든 생각—
이 손이 가졌던 살들, 따뜻함들, 힘들까지도 모두 나에게로 건너온 건 아닐까?

할머니는 나에게 모든 걸 주셨고 나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누려버렸구나.

그날 이후, 나는 종종 그 마른 손을 떠올리며 그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 여행이 어쩌면, 나와 할머니가 함께한 마지막 긴 하루였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도 할머니 품에서 잠을 자곤 했다.
어린아이가 그러듯, 할머니의 품을 찾고, 할머니의 온기를 느끼며 잠이 들었다.
심지어는 할머니 젖을 만지며 잠들던 아이였던 나.

그건 그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가장 깊은 안정감의 표현이었고, 세상에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단 한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내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품이었고 가장 든든한 울타리였다.


이전 02화마음이 자라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