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의 모습을 보며...
장례식장을 나서며,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문 앞에 서 있는 교복 차림의 아이들 틈에서, 문득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지금 이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어딘가 눌려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잔뜩 위축된 상태로 시작한 그 해 봄.
담임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었고, 별명은 ‘강호동’.
그 별명답게 체격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학교 내에서도 무섭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분이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선후배 사이가 군대처럼 엄격했다.
복도 저편에서 선배가 보이면 뛰어가 인사를 해야 했고,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도 선배 그림자는 밟으면 안 된다”는 말이 진담처럼 떠돌았다.
그건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분위기였다.
2, 3학년 선배들 앞에선 숨조차 편히 쉬기 어려웠고, 지나가다 눈을 잘못 마주쳤다고 교문 앞에 불려 가기도 했다. 그때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무사히 하루하루를 지나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공부엔 큰 미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몰랐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뭔가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고, 그저 버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도,
내게 작은 숨통이 되어준 건 학생자치활동이었다.
중학교와는 다르게 고등학교에는 다양한 동아리와 자율 활동들이 있었고, 나는 우연히 교지편집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수업을 빠질 수 있다는 유혹에 끌려 들어갔지만, 막상 활동을 해보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내 손으로 학교 교지를 만든다는 자부심, 인터뷰를 준비하며 손에 땀을 쥐던 순간, 명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정리하던 시간들, 학교 행사를 취재하러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처음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글로 담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경험들이 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아, 지금의 나를 조금씩 이끌어온 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첫째 딸이 입학 첫날, 들뜬 얼굴로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며칠 후, 학생자치 활동에 지원했다며 잔뜩 설레하는 모습은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아빠, 나 동아리 면접 붙었어!”
그날따라 유난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아이는 작은 성취 하나에도 어깨가 으쓱해져 있었다.
불합격보다야 백 번 나은 일이었지만, 내 마음 한편은 자꾸만 복잡해졌다.
‘공부는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부모로서의 걱정이 앞서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이 조금은 옹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왜일까.
딸아이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도 자꾸만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학업에는 큰 미련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며 살았던 그 시절.
누군가는 재능이 없다고 했고, 누군가는 성적표만으로 사람을 판단했지만, 내 안에도 하고 싶은 게 있었고, 그것을 향한 마음이 분명 있었던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
지금 돌아보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항상 예의 바르고, 학교생활도 성실하게 했으니까.
그런데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
우리 학교에서는 반에서 일정 등수 안에 들어야만 학생회 임원 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 기준에 따르면, 나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생회 주임이셨던 담임선생님은 내 성적이 아닌, 나라는 사람을 봐주셨다.
“이 아이는 믿을 수 있어요.”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편집부원과 함께 학생회 총무부장이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누군가 나를 믿어줬다는 사실이 그 모든 두려움을 덮어줬다.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그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았다.
그 시절 나는 비로소 ‘성적’이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는 기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의 딸을 보며 자꾸 그때의 내가 겹쳐 보인다.
어쩌면 내 마음속 걱정은 공부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딸에게 조심스럽게 전하고 싶다.
“ㅇㅇ아, 아빠도 지금 너처럼 학교 안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단다.
그때의 나는, 그것들이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도 간절했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 꿈은 결국 '고등학교 안에서의 꿈'이었다는 걸 아빠는 너무 늦게 깨달았단다.
고등학교는 꿈을 이루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아빠는 그때 왜 몰랐을까, 자주 돌아보게 돼.
ㅇㅇ아, 아빠는 네가 지금처럼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보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 꼭 기억했으면 해.
네 꿈은 교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아도 된단다.
지금의 활동 하나하나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건
너의 꿈을 정하고,
그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거야.
공부는 단지 성적을 위한 게 아니야.
그건 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도구일 뿐이야.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단순한 말보다
'나는 지금 내 꿈을 준비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어.
아빠는, 네가 네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아빠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너는 환하게 밝혀 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