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둘이 하나가 된 날
함께 보낸 3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직장에서, 여행지에서, 그리고 일상 속에서 소중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던 중 여자 친구는 회사를 퇴사하고 본가가 있는 대구로 내려 가게 되어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구, 나는 서울에....
그래서 더더욱 ‘이제는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함께 가게 되었고
그날 저녁, 그녀의 어머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처음으로 어머님께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머님, 저 ㅇㅇ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어머님은 긴 침묵 끝에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ㅇㅇ야, 네가 참 심성 곱고 착한 건 알겠는데,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조금은 불안해서 걱정이 된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나 자신을 더 단단히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확신은 더 커졌고,
그 마음을 어떻게든 증명해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님의 그 한마디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딸을 위하는 마음이었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 ‘내가 생각해도 아직은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채용공고 사이트를 이 잡듯이 들여다보고, 방송사 시험부터 군무원 시험, 기업 공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지원했다.
그야말로 “나는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와 경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대구에서 경주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중, 그녀가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쩔렁쩔렁 소리가 나는, 빨간 돼지저금통 하나.
그리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오빠, 우리 이거 가지고 도망가서 살자~!”
그 순간, 그저 웃기만 할 수 없었다.
5살 연하, 늘 밝고 순수했던 그 아이가 나를 그렇게 믿고, 세상 무엇보다도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또 마음이 찡하던지.
나는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해주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오빠가 꼭 너랑 살 수 있도록, 당당하게 허락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볼게.”
그날의 경주는 아름다웠고,
그날의 저금통은 우리 사랑의 징표 같았다.
지금도 종종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나는 웃고, 또 마음이 따뜻해진다.
2006년 5월 초, 따뜻한 봄날 오후.
엄마가 운영하시던 작은 분식집에서 나는 한창 일손을 돕고 있었다.
바쁜 시간, 엄마가 “소금 좀 창고에서 가져다줘~” 하시기에 잠시 자리를 비웠고, 돌아오자마자 확인된 한 통의 부재중 전화.
낯선 번호, 낯선 지역번호.
그런데 익숙한 국번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전화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ㅇㅇ씨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말.
“축하합니다. 최종 면접에서 합격하셨고, 신규자 입문과정 교육 입소 및 입사식 안내로 연락드렸습니다.”
순간 하늘로 온몸이 붕 뜨는 느낌.
소금이 어디 있는지도, 내가 어디 서 있는지도 잠시 잊을 만큼 기쁨이 몰려왔다.
전화를 끊고 나서,
"만세!!"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정말 영화처럼, 인생이 확 바뀌는 순간.
그간의 고민과 불안, 망설임과 초조함이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과 정식으로, 당당하게 함께 하겠다고.’
그날, 분식집의 따뜻한 볶음우동 냄새 속에서 내 인생의 새 봄이 피어났다.
“ㅇㅇ야~~~ 나 붙었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기쁘게, 나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정말? 축하해 오빠!!!”라고 말해줬다.
그 순간, 나는 하늘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 내가 그녀를 더 이상 불안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바로 2주간의 합숙 교육이 시작되었고, 매일매일 교육 끝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교육이 끝난 날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날, 망설임 없이 그녀의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인사드리며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어머님, 저 ㅇㅇ와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어머님도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을 건네주셨다.
그해 추석, 여자친구의 집에 인사드리러 갔다.
정식으로 허락을 다시 청했고, 부모님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자네, 결혼식은 언제쯤 생각하고 있나?”
그 순간,
마음속에 떠오른 로망 하나. “크리스마스에 신혼여행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12월 23일에 식 올리고 싶어요.”
조금은 즉흥적이었지만, 그 말이 그 자리에 꽂혔다.
그리고 결혼식 장소도 그녀의 부모님이 계신 대구로 결정했다.
막내딸은 꼭 자신 곁에서 결혼시키고 싶어 하시던 그 따뜻한 부모님의 마음을 읽었기에.
그날 밤, 서울로 돌아와
엄마 아빠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 나 12월 23일에 결혼해요.”
뜬금없는 통보였지만,
부모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3개월간의 결혼 준비.
짧고도 숨 가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예복을 맞추고, 예식을 정하고, 초대장을 보내고, 신혼여행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12월 23일,
찬란한 겨울 햇살 아래 우리 둘은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