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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ve Slow Mar 26. 2024

[서평]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집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읽은 후로, 오랜만에 국내 작가의 책을 읽었다. 국내 작품을 고를 때면 더욱 신중한 편인데 아무래도 선별되어 발간되는 해외 작품들과는 달리, 최근 국내 신간들 중 꽤 많은 책들이 수준 미달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회사 독서 클럽에서 공동 도서로 선정된 문해력에 대한 어떤 책은 최근 10년간 읽은 책 중 최악으로 꼽을만한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꽤 신중하게 고른 이 책은 7편의 중단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시작으로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까지 어느 한 편 빠지지 않고 소박하지만 밀도 높은 문장으로 가득 차있다. 요즘 찾기 힘든 수준 높은 순수문학이었으므로 대단히 만족스러워 며칠 전 독서 클럽 모임에서 모두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문장을 곱씹다 보면 최영미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던 때가 생각난다. 90년대 말의 대학교 신입생 시절, 공대 詩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에 그녀의 '마지막 섹스의 추억', 'Personal computer' 등을 읽으며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토록 발칙하고 파격적이면서, 기존의 여성상에 도전적인 글을 처음으로 읽었던 바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특히 현대문학의 이해 같은 수업에서 발표를 할 때마다) 페미니즘의 예로 그녀의 시를 종종 인용하곤 했다. 나는 최영미 작가를 사랑했다. 그런 면에서 최은영 작가의 글은 최영미 작가의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면을 닮았는데, 풀어내는 방식은 은희경 작가처럼 일관되게 차분하고 냉소적이며 때론 작품 속 상황과 거리를 둔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세기말 대학시절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맞다. 최은영 작가의 글에는 향수가 있다. 내가 사랑했던 작가들의 정취가 글에 녹아있다.


여류 작가들에겐 숙제가 있는 듯하다. 지난 역사에서 볼 수 있듯, 펜을 들고 있는 지식인은 언제나 사회문제에 책임감을 가지기 마련이고 마치 숙명인 듯 시대정신은 작가 정신과 맞닿아있다. 그래서인지 문체는 예민하고 서정적이며 섬세한데, 글의 내용은 지나치게 무겁고 심각하다. 마치 온 나라의 여성 문제를 본인이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지극히 비장하고 우울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지치고 피곤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가부장제 속의 여성의 삶이,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그랬다는 것을. 아프고 우울하고 지치고 피곤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고, 책을 덮어버리듯 모른 체 도망갈 수 없는 삶의 고단함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쩌면 페미니즘의 발로는 필연적이다. 누군가의 용기로 태어난 것이 아닌, 반드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남성을 문제의 근원, 여성의 적으로 간주하고 써 내린 작품들은 분명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가부장제의 불합리성과 폭력성은 비단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힘과 권력에 의한 부당함은 강자에게서 흘러나와 약자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이므로, 남자들도 피해자가 된다. 아니, 세상 모든 약자는 성별과 무관하게 피해자가 된다. 여성의 고통을 남성들이 완벽히 이해할 수 없듯, 남성들 역시 가부장제와 권력과 계급과 힘의 논리가 가진 부당함에 대해 싸워왔다는 것을 여성들 또한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작품 중 하나인 '답신'을 읽는 것에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가정 폭력의 그늘과 상처는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아린 탓에 여러 번 나눠서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비참함과 참담함, 피해자의 현실도피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결국 맞이하게 되는 끝없는 무력감은 누군가만 겪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남녀 또는 노소가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40대가 된, 이미 세상에 닳은, 부당함을 직시하지 못한 중년 남성의 평가일 수도 있겠다. 최영미 시인의 시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은 시인을 고발했을 때에도 어쩌면 누군가는 지금의 나와 같은 평가를 했을 수도 있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공격해야 하냐고. 그런 그에게,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외롭지만 아주 희미한 빛에 기대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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