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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담 Feb 20. 2022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

영화 비평: 대만 뉴웨이브 시네마

최근에 본 영화 중 영화 비평을 쓰고 싶을 만큼 감흥이 컸던 작품을 떠올려보니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가 떠올랐다. 80년대 대만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에드워드 양은 허우샤오셴 감독, 차이밍량 감독과 함께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다. 대만 뉴웨이브는 세상을 극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다큐멘터리적 촬영기법을 이용해 사물과 인물을 관조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와는 굉장히 대비되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요즘은 이전에 비평을 썼던 작품 '똑바로 살아라'처럼 감독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영화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에드워드 양 감독

이 영화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무력함과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사소한 사건들로 인해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연결고리가 점점 확장되면서 플롯이 진행된다. 무관해 보이는 듯한 일련의 사건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영화의 흐름은 할리우드 영화의 기승전결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진행을 보여준다. 이처럼 감독은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통해 현대사회 속 개인이 겪는 모순과 좌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공포분자>가 현대인들의 존재론적 질문을 어떤 장치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지 분석하려고 한다.


먼저 감독은 ‘시간-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시간-이미지가 운동-이미지보다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는 질 들뢰즈가 주장한 개념으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지니고 있다. 운동-이미지는 “운동-감각적 구조 논리에 의해 조직된 이미지”로 “다른 이미지들과 함께 자연적 연쇄작용을 하는 요소로서 파악된 이미지”다. 반면, 시간-이미지는 “더 이상 행동으로 변형되지 않는 시/지각적, 음향적 상황의 출현에 의한 논리의 단절”을 만들어낸다. 시간-이미지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로셀리니 감독이 있다. 


쉽게 말해, 운동-이미지는 영화 초반부에 제시된 문제가 등장인물의 행동을 통해 해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액션이 강조되고, 영웅적 개인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양상의 운동-이미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시간-이미지에서는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고, '선'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을 찾아볼 수 없다. <공포분자>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없음은 물론,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인물 역시 없다. 대신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주인공이 겪는 무기력함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작품 내에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감독의 주관이 거의 개입되지 않으며, 결말마저 열린 결말이다. 관객 역시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관객들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질문을 던지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다.


 랑시에르는 그의 저서 <영화 우화>에서 “영화적 이야기는 실패한 이야기”라고 했다. 즉,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경계하고 오히려 이러한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끄러운 이야기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려는 노력을 “감각적 물질의 사건들에서 빼앗었던 잠재성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운동-이미지처럼 앞뒤가 완전히 들어맞고 이미지들을 매끄럽게 이어버리는 할리우드식 영화는 관객이 사유할 수 있는 틈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미지처럼 부자연스러운 이미지의 연결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독특한 전개 방식, 이질적인 숏의 연결, 다큐멘터리적 촬영 기법 등 감독은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일상 속 무력함과 권태를 뻔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또 다른 장치는 ‘몽타주’이다. 이 영화는 샷이 많은 편이고 샷의 연결 역시 빠르게 이루어진다. 또한, 플롯과는 큰 연관이 없는 듯한 사물이나 풍경들이 하나의 샷으로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영화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스틸컷의 조각들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카메라와 함께 아침을 준비하는 청년의 모습이 여러 이미지 컷들을 통해 전달된다. 이후 도로에서 죽어있는 한 남성의 시체로 장면이 전환된다. 경찰차가 나타나는 다음 장면을 통해 해당 에피소드가 진행될 것처럼 그려지더니 갑자기 침대에서 곤히 자는 주울분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빨간 벽돌의 화장실에 있는 '이립중'에서 푸른빛의 집에 있는 '숙안'으로 이어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장면 간의 대조가 더 드러나도록, 컷을 연결하고 있다. 제각각의 이유로 지쳐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이어 붙이면서 그들의 위태로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곳곳의 이미지 컷들은 인물의 심리나 상황, 분위기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모두 몽타주 효과에서 기인한 것이다. 감독은 이질적인 장면들의 연결을 통해 오히려 특별한 감정이나 추상적인 관념을 만들어낸다.


에이젠슈타인은 몽타주를 5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였는데, <공포분자>에서 사용되는 몽타주 방식은 Intellectual montage라고 볼 수 있다. 해당 몽타주는 샷의 연결을 통해 추상적인 관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동일한 액션과 이미지를 다른 앵글과 샷으로 여러 번 담아내는 할리우드식 Rhythmic montage와는 다르다. <공포분자>는 Intellectual montage를 이용해서 불친절한 컷의 연결로 되려 더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한다. 마소군이 자신의 암실에 숙안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크게 확대해 여러 조각으로 인화를 해놓은 것은 마치 ‘몽타주’를 상징하는 듯하다. 개별로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고, 어떤 의미도 없는 듯한 사진들이 모여서 숙안의 얼굴이 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과 이미지들이 모이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것이 바로 <공포분자>의 플롯이 전개되는 방식이자 인물들이 기록되는 방식이다.

 <공포분자>에서는 실험적이고 낯선 편집 및 촬영 기법이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주울분이 이립중에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는 기존의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촬영 기법으로 주인공이 마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울분은 권태와 우울함으로 인해 남편 이립중과 갈등을 겪는 인물로 현대인들의 존재론적 고민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이질적인 기법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그녀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이외에도 두 가지 결말을 제시하는 등 기존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과 전개를 확인할 수 있다.


<공포분자>는 감독 에드워드 양의 스타일과 대만 뉴웨이브 시네마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시간-이미지와 몽타주, 독특한 연출기법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와 무력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감독은 현대인들의 절망과 방황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좌절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영화를 마치면서 주제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기 바쁜 청년, 끊임없이 방황하는 혼혈 소녀, 출세에 집착하는 의사 남편, 권태로운 삶의 변화를 원하는 소설가 아내. 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찾고자 했던 답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영화 속 인물들과 가까워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리차드 러시튼 · 게리 베티슨. 『영화이론이란 무엇인가』. 이형식 옮김. 명인문화사. [2013] 2016.     

자끄 랑시에르. 「프롤로그: 엇갈린 우화」. 『영화 우화』. 유재홍 옮김. 인간사랑. 2011. 13~40.

Miller, D. A. “On the Universality of Brokeback.” Film Quarterly 60.3 (2007): 50-60.     

Stam, Robert. “Just in Time: The Impact of Deleuze.” Film Theory: An Introduction. Blackwell, 2000. 256-62.     

공포분자. 에드워드 양. 이립군, 무건인, 왕안. 중영고분유한공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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