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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담 Jan 27. 2022

드디어 쉬기로 결정했다

2021년 겨울의 끝자락

아등바등 지켜내던 것이 꽤 보잘것없음을 깨닫는 순간 밀려드는 감정이 공허함이나 허무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편안함에 가까웠다. 그것 때문에 더 이상 힘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되려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 사람이 지켜내던 것은 곧 그 사람을 지탱하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꽤 보잘것없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다. 예를 들면, 사람들의 머릿속의 나, 사회의 과반수가 동의하는 삶의 지표, 커리어 등등. 이것이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나는 주어진 삶의 과제가 무엇이든 줄곧 준수한 성과를 거두며 살아왔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자신의 사소한 실수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유일하게 나를 무너트리던 것은 내 힘과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산산조각이 나고, 그 파편들이 몸에 박혀 남몰래 슬픔을 흘려보내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노력한 만큼은 행복할 수 있었고 그래서 바쁘게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내게는 일종의 '정답'같았다.


나는 올해 23살이 되었다. 어정쩡한 나이다. 휴학 한번 없이 학교를 다녔다. 광고학회, 극단 연출, 여행 대외활동, 결혼식 촬영 기사 등 어쩌다 보니 궁금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몽땅 해본 것 같다. 후회도 없고, 여한도 없고 오히려 여운이 깊다면 깊을 그런 3년이었다. 새로운 경험과 사람에서 무언가를 얻고 그것들로 나를 채워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 내가 2021년 겨울, 정말 단호하게 '쉼'을 결정했다. '이제는 쉬고 싶다'보다 '이제는 쉴 수 있겠다'라는 마음에 가까웠다.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쉼'은 대체로 불안과 권태와 직결되곤 하는데 이번만큼은 나만의 '쉼'을 가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대책 없이 장기간 놀고 쉴 수 있는 것은 청년기의 특권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생애주기별 특권이라는 특권은 몽땅 누리고 죽고 싶은 마음이다.


놀라운 건,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향후 2년간의 계획을 꼼꼼히 세우던 내가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다. 지친 탓인지,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늘 알았던 탓인지. 생각의 변화는 당연하다는 듯 찾아왔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곁에 두며, 어떤 사람을 품고 사는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작년 겨울, 나는 내가 어떤 질문을 마주했는지 조차 몰랐지만 무작정 '정답'이라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타인의 삶과 생각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우연히 좋은 사람들까지 몰렸다. 덕분에 사람에게 얻는 것이 많은 한 해였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동력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지금 나의 심지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위태로운지 깨달았다. 꽤 그럴싸해진 껍데기를 보며 만족하고 안심하던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의 답답함을 생생히 기억한다.


사실 뻔한 깨달음이다. 당장 서점에 가서 쌓여있는 에세이 중 한 권을 대충 집어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뻔한 깨달음이 정작 나의 깨달음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 작년 겨울, J군과 Y양과 무척 친하게 지냈다. 그들은 나와 많은 부분이 반대인 사람이었다. 큰 성취가 없어도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잉여로운 하루에서 느껴지는 여유는 단단해 보였다. 나는 나를 아끼는 마음에 의무적으로라도 스스로를 쉬게 하는 편이었는데, 나의 여유와 그들의 여유는 결이 달랐다. 모두들 일정한 템포로 걷다 보면 누구든 끝낼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다. 누가 먼저 끝내는지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무엇이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걸 나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동안 나는 또래 중에서 꽤나 전투적으로 사는 편에 속했다. 하나의 성취를 이루어내면, 곧장 다음 성취를 위해 움직였다. 착실하게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이 당연한 임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대체로 능력과 운이 어느 정도 따라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내 안에 쌓여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속이 꽤 찼을 법도 한데도 계속 공허했던 이유는 내 안에 쌓인 것들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일 테다. 내 안의 것들을 들여다보고 써 내려가다 보면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모든 것을 멈추고 글을 쓴다. '쉼'을 결정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넘어간다. 일단은 계속 쉬어보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비워낼 것을 비워내고 내가 채우고 싶은 것들로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 '쉼'을 마친 후에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진 사람일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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