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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담 Jul 13. 2023

사막 한복판에서 열린 댄스 수업

우리는 사막에서 밤새 춤을 췄다

발이 모래밭에 푹푹 빠지는 바람에 걷는 감각을 다시 익혀야 했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운동화 안으로 모래가 우수수 들어왔다. 모래가 들어찬 신발 안의 촉감이 낯설어서 발가락을 연신 꼼지락 거렸다. 부드러운 모래 입자가 양말을 타고 물처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눈 앞에 펼쳐진 붉은 땅의 이름은 사하라 사막이었다.

본격적으로 사막을 횡단하기에 앞서 일전에 전통 의상점에서 산 히잡을 주섬주섬 꺼냈다. 천을 마구잡이로 얼굴에 두르고 있었더니 보다 못한 베르베르인이 다가와 도와주었다. 우리가 탈 낙타를 관리하는 청년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낙타에 올라탔다. 웅크리고 있던 낙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긴 다리를 펼쳐 보이며 일어섰다. 순간 무게가 앞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고꾸라지지 않게 두 다리로 낙타의 몸을 끌어안아야 했다. 친구들도 잇따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낙타에 몸을 실었다. (나는 당시 74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모로코를 여행하고 있었다.)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는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필요한 최소한의 짐이 들어있었다. 물을 두둑이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2L짜리 물병의 헤드 부분이 에코백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우리는 낙타를 타고 사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었다.


모로코 여행을 함께한 74명의 외국인 친구들

혹 위의 기울어진 안장 덕분에 엉덩이가 금방 아파왔다. 게다가 몸이 어찌나 흔들리는지 평소에 잘 안 쓰던 부분의 근육까지 서툴게 써가며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낙타에 몸을 맡긴 채 갸우뚱거리며 사막을 감상했다. 세차게 주황빛을 내뿜던 태양이 붉은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은 잠깐 보랏빛을 내더니 이내 까맣게 물들었다. 가로등도, 손전등도, 작은 불씨 하나도 없는 원시적 공간은 놀라운 속도로 어두워졌다. 희미한 빛으로 확보한 시야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눈앞의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나아가는 낙타와 그 위에서 덩달아 씰룩이고 있는 안나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곳의 교통 체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표지판도, 그럴싸한 생김새의 도로도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비슷하게 생긴 모래 언덕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이끄는 베르베르인의 걸음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그가 묵묵히 심은 발자국 위에 크고 작은 낙타의 발자국이 차례로 새겨졌다. 이곳에선 발자국이 이어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이토록 척박한 땅에서도 생을 가능케 했던 그들의 삶의 지혜에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낙타의 걸음이 느려지는 것 같더니 저 멀리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였다. 짐을 풀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캠프 한 켠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밤을 맞이했다. 말이 공연장이지 그냥 단단하게 다져진 모래 바닥이었다. 그 위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둥글게 둘러앉아 베르베르인의 전통 공연을 감상했다. 그들은 북을 두드리고 방울이 달린 악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선율이라고 칭하기엔 애매한 음의 연속이었지만 독특한 리듬이 충분히 흥을 북돋았다.

친구들이 하나둘 일어나더니 낯선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전개였다. 자신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망설임이 없던 유럽 친구들은 늘 나를 더 즐거운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큰 원을 그리며 빙빙 돌기도 하고, 앞사람의 어깨를 잡은 채 기차놀이도 했다. 아, 림보 놀이도 열심히 했다. (74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사막에서 강강술래와 꼬리 잡기를 한 셈이다.) 이어서 여행의 리더였던 카를로스가 스피커를 가져왔다. 북소리 대신 신나는 팝송이 텐트에 울려 퍼졌다. 친구들은 좀 더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겉돌며 뚝딱거리던 나도 금방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엉성하고 멋없는 춤사위가 어떻게 보일지는 언제부턴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리듬에 맞춰 마음이 가는 대로 팔다리를 휘적였다.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몰려왔다. 한 손에는 수천리 떨어진 마트에서부터 소중히 품어온 술병이 있었다.


내 옆자리에선 수줍음이 많던 멕시코인 친구가 자신의 움직임에 심취한 듯 눈을 꼭 감은 채 게다리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다들 본인만의 리듬과 바이브를 자랑하며 몸을 흔들었다. 그 다채로운 엉뚱함과 시끄러움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뛰어노는 순간의 희열은 대단했다. 모래밭 위에서 신나게 발을 구르는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 안까지 차오른 웃음을 머금거나 삼키지 않고 모조리 뱉었다. 우리는 자신의 활짝 웃는 모습이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춤을 추는 나의 친구들

밤이 깊어질 무렵, 스페인의 작은 섬에서 온 안나라는 친구가 ‘발차타’를 선곡하더니 앞에 나가서 살사를 추기 시작했다. 살사 강사 자격증이 있다는 그녀의 남자친구도 그 옆에서 매혹적인 동작을 잇따라 선보였다. 몸의 선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춤이었다. 그들은 살사의 기본 스텝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이 외치는 카운트에 따라 앞뒤로 이동하거나 손동작을 추가했다. 사막 한복판에서 살사 수업이 열린 셈이다. 서툴게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많은 친구들이 그럴듯하게 살사를 추고 있었다. 행복해서 춤을 췄고, 춤을 춰서 행복했다. 사막과 춤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단어였던가.


다른 문화권의 춤을 배우는 일은 계속됐다. 모로코 출신 가이드와 캠프 스태프들과 함께 아프리카 음악을 틀어놓고 모로코 전통 춤도 췄다. 그들이 먼저 동작을 보여주면 우리가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요상하다고 생각했던 춤도 그들의 리듬에 맞춰 추니까 제법 멋져 보였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그들은 바닥에 있는 모래를 한 줌 집어 들며 '아프리카'라고 흥겹게 외쳤다. 그들에게 '아프리카'가 어떤 의미일지 새삼 궁금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밤새 춤을 췄다. 사막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를 그곳으로, 그 순간으로 이끈 모든 선택과 기호에 감사함을 느꼈다. 지금도 종종 모래밭 위에서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발을 맞추던 순간을 떠올린다. 낙타가 위에 저장해 둔 먹이를 이따금 꺼내서 꼼꼼히 곱씹는 것처럼, 그리고 그 조각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처럼.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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