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함께 감각한다는 건
퇴근 후, 6평 남짓의 자취방에서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를 보며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있을 때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도통 쓸 일이 없던 왓츠앱 (유럽에서 많이 쓰는 메신저)의 알람이 울렸다. 지난해 10월 모로코를 여행하다 만난 이탈리아인, 다비드였다. 약 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온 안부 인사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어중간한 길이의 수염, 이탈리아 사람인 게 도무지 숨겨지지 않던 특유의 억양. 그를 연상시키는 단서들이 하나둘 생각나더니 자연스레 그를 처음 만난 곳이 떠올랐다. 신비롭고도 경이로웠던 사하라 사막, 그의 이름 하나가 순식간에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지난해 10월, 나는 74명의 외국인들과 함께 모로코를 여행했다. 유럽 학생 연합의 학생 투어 상품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유일무이한 아시아인이었다)
붉은 대지 위에 짙은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사막 한 켠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르베르인의 전통 공연이 기나긴 밤의 시작을 알렸다. 북소리가 신명나게 울려 퍼졌다. 나의 친구들은, 여행 내내 나를 더 즐거운 곳으로 이끌었던 그 외국인들은 찰나의 행복을 늘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곤 했다. 그것은 하나의 노랫소리가 되어 공간을 채우기도 하고, 하나의 춤사위가 되어 모래 바닥을 울리기도 했다.
몇몇 친구들은 공연이 끝난 후 덩그러니 놓여있던 모로코 전통 악기에 관심을 보였다. 스페인 친구들은 캠프 스태프가 연주하는 북소리에 맞춰 'Bella Ciao'를 흥겹게 불렀다. 호기심에 같이 북을 두드려 보다가 문득 그들에게 한국의 장단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사물놀이 부였다.) 덩/쿵/쿵덕/쿵.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진모리장단을 선보였다. 친구들은 큰 관심을 보이더니 열심히 따라 치기 시작했다. 이 무거운 사막의 밤공기를 가로질러 퍼져나가는 것이 한국의 자진모리장단이라니, 그 사실이 퍽이나 재밌었다. 사막에서의 밤은 좀처럼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마음에 들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막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모직 담요를 두른 채 모닥불 옆에서 친구들의 춤판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한쪽에선 대마초를 권유하는 캠프 스태프와 눈을 말똥거리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미국인들이 있었다. “Hi”- 굵고 낮은 음성이 들려와 화들짝 뒤를 돌아봤다. 이탈리아에서 온 다비드와 독일에서 온 비안느였다. 동행이 많았던 탓에 풍경 위에 대충 얹어 기억하던 얼굴이 꽤 있었는데 그들도 그중 일부였다. 둘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간략히 가진 후, 그곳에서의 감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연신 감탄하며 말을 덧붙여갔던 건 단연 사막의 밤하늘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교과서에 자료 사진으로 나올 법한 별이 가득한 하늘이 있었고, 심심치 않게 유성우가 떨어졌다. 게다가 은하수가 어찌나 선명히 보이는지 자꾸만 두 눈을 의심하게 됐다.
사막에서 밤하늘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빛이 한 점도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모래 언덕을 넘어 캠프의 불빛이 닿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떠났다. 우리도 캠프를 등진 채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갔다. 길 중간중간에 별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친구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어떤 친구들은 휴대폰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 샌드보드를 타고 있었다. 고요하고도 시끌벅적한 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더니 빛도 소리도 없는 무결하고도 새까만 공간에 다다랐다. 캠프를 비롯한 인간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진 지 오래였다. 별을 제외하고는 발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복판에 도착한 우리는 나란히 누워서 하늘을 봤다. 모래 바닥의 한기가 등을 타고 올라왔다. 살면서 그렇게 고요한 순간은 처음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저 멀리 텐트의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일하게 감각할 수 있는 파동이었다. 그마저도 희미했다. 덕분에 서로의 침 삼키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각자가 밤하늘에 심취해 있음을 깨닫고 그 침묵을 지켜주었다. 그러다가 유성우가 보이면 가끔씩 'Did you see that?'으로 시작해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다비드는 소말리아의 원양어선에서 3년 간 일을 했다며 운을 뗐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과 비슷한 하늘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볐다는 그는 바다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밤이 오면 선박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고 했다. 그곳의 하늘에도 무수히 많은 별이 심어져 있었다고, 그 밤들을 좀처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를 알게 된 지 겨우 1시간이 흘렀을 때였지만, 그가 인도양 위에서 보내야 했던 그간의 밤이 지금처럼 평화롭고 포근했기를 바랐다. 우리는 계속해서 몇 줄의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의 단편적인 부분을 공유했다. 문득 내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두 사람에게 일종의 애틋함 같은 걸 느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가 어쩌다 모로코에서 만나 은하수를 함께 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차디찬 모래 바닥에 온몸을 대고 있었더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나는 나시 위에 후리스 재킷 하나를 걸치고 있었고, 기온은 10도를 웃돌았다. 다비드는 벌벌 떠는 나를 보더니 자신의 아우터를 내어주었다. 덕분에 다시 모래 언덕을 넘을 수 있었다. 이번엔 멕시코, 오스트리아, 폴란드에서 온 친구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모나코라는 친구와 함께 담요를 덮어쓰고는 좀처럼 질리지 않는 밤하늘을 마주했다. 이윽고 큰 유성우가 떨어지자 우리는 하나같이 침묵 속에서 소원을 빌었다. 이토록 비과학적이고 낭만적인 믿음에 전 지구가 반응해 왔구나 생각했다. 밤은 길었고, 유성우는 무수했다. 꼭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고요하고도 충만했던 그날 밤을 추억하며 휴대폰을 매만지다가 다비드의 문자에 답장하기 위해 앱을 켰다. 영어 자판만 열면 굼뜨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나의 안녕을 전했다. 이어서 그는 요즘 어디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는지 물었다. 문득 여행은 끝났지만, 그 밤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재생되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어쩌면 그리움을 머금어 좀 더 무거워진 채로 말이다. 옆사람의 다정함과 온기가 적막을 휘저어 놓던, 빛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쉬워서 일출을 마냥 미루고 싶던, 그러니까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밤, 그런 밤이 내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