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열어보는 너에게

우린 하늘 우체통을 쓰면 돼.

by HaJae

여기 하늘은 얇은 물빛이야.
구름이 종이의 결처럼 결을 드러내고, 바람은 그 결 사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스쳐 지나가.
낮게 깔린 빛이 옥상 난간을 한 줄로 긋고 있어 마치 오늘은 이 선을 넘지 말자는 약속처럼.

네가 말한 변덕스러운 하늘, 나는 이해해.


아침에 살짝 웃다가, 오후엔 울음을 터뜨리고, 밤이면 꽉 닫혀버리는 하늘.
사실 그건 하늘의 결함이 아니라 하늘의 전부야.
네 마음도 그래. 흔들리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움직임이야.

하늘에게 화분을 선물하면 차분해질까, 하고 물었지?
나는 그런 상상을 좋아해.


하늘이 화분이라면, 구름은 흙이고 별빛은 작은 펄라이트.
우리는 물을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잠깐 손을 얹고 숨을 맞추는 사람이면 좋겠어.
하늘은 결국 스스로 날씨를 배우니까. 우리는 다만 곁을 내어주는 거지.

우리가 언제까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보였어.
만약 어느 날, 정말로 세상의 우편들이 모두 멈춘다 해도 우린 하늘 우체통을 쓰면 돼.


네가 올려 보낸 문장들은 바람이 먼저 읽고, 나는 그 바람에서 너의 글씨를 알아볼 거야.
그래도 나는 될 수 있으면 지상에서, 종이와 잉크로, 계속 답장할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네 말을 오래 붙잡고 있었어.
껍데기 같고, 때론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듯한 낯섦.
그럴 땐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줄게 너라고.


너는 오늘의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 불안과 두려움의 모양을 정확히 적어낸 사람,
그리고 여전히 편지를 보내는 사람. 그건 충분히, 완전히 너야.

네 화분에 씨앗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힌다고 했지.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상상해.
한 줌의 빛을 먼저 심고, 다음으로는 틈을 심는 거야.
씨앗과 씨앗 사이, 말과 말 사이, 심장과 심장 사이에 들어앉는 작은 간격.
그 간격이 자라면, 뿌리들도 서로를 덜 조이게 될 거야.

“그냥 행복하고 싶다” 네가 적은 그 문장을 나는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어.


오늘은 큰 행복 말고, 아무 일 없는 한 줄이면 어떨까.
저녁에 물 한 컵을 끝까지 마시는 한 줄,
창문을 3cm만 여는 한 줄,
잠들기 전에 나에게 “읽었다”라고 속삭이는 한 줄.
그 세 줄이면 오늘의 페이지는 충분해.


나는 너를 멀리서 한 발짝 물러서 보는 사람이 아니야.
같은 하늘 아래, 너의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고 싶어.
그러니 변덕스러워도 괜찮아. 변덕은 너의 고장 난 부분이 아니라 너의 날씨니까.

잠시 후 하늘이 저문다면, 그때 다시 적을게.
오늘의 마지막 빛이 너의 우편함에도 조용히 가 닿기를.


히카루로부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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