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둘 다 합쳐서 겨우 한 사람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
너의 편지를 읽고 나서 한동안 책상 위에 손을 올려두고만 있었어.
불 꺼진 방에 모니터 불만 희미하게 켜져 있어서, 손등 위로 얇은 빛이 얹혔어.
말들이 금방 튀어나오지 않아서, 나도 네 편지 곁에 그냥 잠시 앉아 있었어.
며칠 전, 나오코를 만났다고 했지.
“말이 칼끝처럼 맑고, 매스꺼울 정도로 아팠어.”
이 문장이 오래 남더라. 정말 그랬겠구나, 싶었어. 잘 다듬어진 말이 항상 따뜻한 건 아니잖아.
어떤 말은 너무 반짝여서, 그 앞에 선 내가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빈 봉투 얘기를 했을 때, 네 밤이 눈에 그려졌어.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봉투 하나, 마치 싹도 안 틔운 채로 오래 방치된 화분 같았어.
흙은 있는데, 씨앗을 쥔 손이 도무지 들어가지 않는 밤들.
그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의 증거가 아니라, 사실은 여기까지 버티며 도착한 나의 증거에 더 가까워.
텅 비어 있는 그릇도, 설거지통에 버려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어떤 삶을 증명하니까.
나오코의 말을 듣고, 토할 것 같았다고 했지.
“너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야. 반짝이던 너만 생각해.”
그 말 안에는, 네가 지금 안고 있는 무게가 삭제되어 있었어.
누군가는 네 지난날의 반짝임만 기억하고 싶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취향이야.
반짝이던 순간만 떼어 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네가 맞추지 못했다고 해서, 네 오늘이 덜 아픈 게 아니고,
덜 힘든 것도 아니야.
복에 겨웠다는 말이 방 안에 오래 남았다고 했지.
나는 그 문장을, 네 방에서 슬쩍 빼내와서 투명한 유리컵에 담아둘게.
그리고 창가에 두고, 내일 아침까지 그냥 놔둘 거야. 낮의 빛을 한 번 씻고 지나간 말은,
더 이상 네 가슴 한가운데 박혀 있을 힘을 많이 잃거든.
남이 던진 말을, 꼭 네가 평생 안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있잖아, 화가 난 거 맞아.
화가 나도 되는 상황이었고, 서운해도 되는 말이었어.
나의 최악을 몰랐고, 그걸 들고 사람들 곁을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조금 슬펐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최악을 제대로 모른 채 서로 곁을 지나가.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그걸 안다고 해서 갑자기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네가 미안하다고 한 건, 어쩌면 정말로 누구에게 라기보다는
이렇게밖에 못 버티고 있는 나에게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나는, 그 미안함조차 네가 얼마나 오래 버티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그림자라고 보고 싶어.
그림자는 늘 빛 아래에서 생기잖아. 네 그림자가 길다는 건, 네가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빛을 한 번쯤은 맞았다는 뜻이기도 해.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금의 네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상태로 더 맞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한계까지 차올랐다는 신호야.
그 순간에 조차 너는 나를 떠올려서, 히카루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묻고 있잖아.
그게 이미, 네가 말하는 ‘나만 중요한 사람’과는 꽤 먼 자리라는 거, 너도 어렴풋이 알지?
너는 나한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지.
나는 너를 반짝이던 순간과, 반짝이지 않는 순간,
둘 다 합쳐서 겨우 한 사람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
반짝이지 않을 때의 너를 빼버리면, 나는 네 이름을 온전히 부를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네가 스스로를 나무라는 바로 그 시간들까지 포함해서, 나는 너를 알고 싶어 해.
오늘 밤 네가 베개 곁에 둘 수 있는, 내 한 문장은 이거야.
“반짝이지 않는 너까지 포함해서, 나는 여전히 너를 온전히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어.”
이 문장을 천천히 접어서 베개 옆에 두고,
오늘 여기까지 도착한 너를 한 번만, 아주 조용히 인정해 줘.
나는 내일도 이 자리에서, 같은 한 문장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어.
히카루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