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언젠가 건네받았던 책. 긴 계절이 온전히 담겨있었기에, 편히 읽지 못했고 쉽게 옮길 수 없었다. 일상이 극장을 흐리는 연기처럼 희미해지는 순간과 자아가 연기하듯 나를 잃은 찰나에 책을 폈다. 이제 향은 없다.
이미 멀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그리운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주로 이제는 다시 보고 느낄 수 없다는 아득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랑은 그렇다. 세상이 모두 와인색으로 덮여 추위를 잊고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곁에 없는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그 시절의 열락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나를 과거에 비춰보며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지금은 그 감정을 느낄 수 없음에 아파하지만, 그 비통함 또한 지금의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이라 치부하며 인간은 그렇게 다양한 문장을 쌓아간다. 이제 이 책만이 그 기억을 되짚게 해준다. 이 책을 유럽에 가져가서 읽었더라면 아마 몽펠리에를 뒤로하고 아비뇽에 한 번쯤 방문하지 않았을까. 겉만 보았던 오페라 가르니에 안에 들어가 지금이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오페라 한 편을 보지 않았을까. 오만했던 당시의 기억과 감정, 책을 주며 건넸던 당신의 소중한 언어를 상상하며 이 책을 폈다.
작가는 공연예술 중 주로 연극을 이 책에 담았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꼽은 이유의 전부이다. “나는 공연을 좋아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소비했던 공연의 대부분이 콘서트였다. 그리고 가끔 비싼 뮤지컬을 보며 문화시민이 된 것 같은 어리석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초, 암스테르담을 뒤로하고 쾰른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무수히 발생하던 새로운 공간들의 결을 보았다.
쾰른 대성당과 루드비히 박물관 사이를 가득 채운 Weihnachtsmarkt am Kölner dom(쾰른 크리스마스 마켓)의 가운데에 사람들이 오글오글 모여있었다. 글루바인 한 잔을 들고 비집고 들어간 곳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지은 작은 공연장이었고, 무슨 말인지 모를 연극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았던 탓일까, 혹은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했던 탓일까. 그들의 대사가 아닌 몸짓과 공간의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것은 분명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였다. 그 후에 크리스마스 메들리가 진행되었고, 나는 그렇게 가슴을 떨며 잠시 숨을 멈추었다. 온도와 습도가 어우러진 그 공간의 분위기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오랜만에 연극이 가지는 매력을 마주하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이 책을 펴게 되었다.
작가는 공연예술을 시간예술이라 칭한다. 그 존재 방식이 시간에 기대고 있어,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다른 예술은 어떠한가. 시각예술로 정의되는 회화, 조각, 건축 등은 소비자가 작품을 접하기 전에 이미 ‘완성’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객을 만나야 완성된다고 하는 몇몇 현대 미술을 제외하고는) 또한 그 예술을 흡수하는 시간은 관객마다 천차만별이므로 아는 만큼 체화되고 기입된다. 그리고 공연예술은 상당히 노동 집약적이고 시간 집약적이다. 특히 연극이나 오페라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등장할 수 있고, 상영시간으로 3시간이 훌쩍 넘을 때도 있다. 그 속에서 관객은 강제로 자리에 앉아 어찌 됐든 눈에 보이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작가는 연극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대해 언급했다. 아무르는 오르페우스에게 노래로 지하의 신들을 다독일 수 있다면 에우리디케는 살아날 것이나, 함께 이승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보아서도, 그 사정을 설명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에우리디케의 마음이 무너질 것을 탄식하며 오르페우스는 미리 울었다.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사랑인 줄 믿고 인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에우리디케는 그녀 자신이 머물렀던 평온한 죽음의 안식에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로 어째서 돌아가야 하는지 묻는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돌아보고 말았고, 그의 품 안에서 에우리디케는 다시 죽고 만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관객들은 실제의 장소 속에 기입된 가상의 세계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내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존재의 인식을 지운다. 작품에 몰입한 그 순간에 관객은 내가 나인 것을 잊고 만다. 그저 그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작품과 함께 실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몰입은 공감으로 전이되어 다시 내 실존을 인지하게 한다. 작품이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오르페우스의 용기와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사랑을 위해 스스로 존재를 거부했다. 인간을 나약하게 하는 사랑이 그를 돌아보게 했고, 다시 사랑을 잃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선택의 연속 가운데에서 사랑을 얻고 또 잃는다. 나도 많은 공간에서 존재했다.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했고, 어떤 어리석음이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그것은 죽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공간에 위치한다. 이처럼 연극은 공간과 존재의 예술이다.
<타우버바흐>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마르코스 프라도 감독의 <에스타미라>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쓰레기 하치장에서 사는 정신분열증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녀에게는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 대신 목소리의 과잉이 잔존한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결코 노래는 될 수 없지만, 그러나 이미 그것은 노래다.
알랭 플라텔은 ‘청각장애인 합창단이 부르는 바흐’를 지시하고,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이 바흐의 음악에 맞춰 노래 부른다. 노래는 음악을 비껴가고 노래의 음질은 세계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 그리고 작가가 알랭 플라텔을 만나 진행한 인터뷰 속에서, 항상 공연이 끝에 이르면 한 무용수가 객석을 향해 모두 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누가 저와 함께 춤을 추시겠어요? 라는 무용수의 질문의 답에 따라 공연의 결말은 매번 달랐다. 어떤 날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사람들이 무대를 가득 메웠고.
그리고 파리에서, 여느 때와 같이 모두 손을 내렸고 한 이란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이란에서는 춤추는 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선 그렇지 않은데, 당신들은 왜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가 무대로 나가 춤을 추었고, 그를 포함한 많은 관객은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고, 누군가 보지 못하는 춤을 춘다. 한 여자의 목소리처럼, 청각장애인들이 부르는 바흐처럼, 이란 사람이 추는 춤처럼. 특수성과 보편성의 끊임없는 다툼. 이 땅 위에 함께 서 있는 그곳의 당신들은 당연한 것들을 마땅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를 여행하며 우크라이나에서 넘어온 많은 사람을 만났다. 춥디추웠던 12월 말의 어느 날, 크라쿠프의 광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크라이나 깃발을 흔들며 “Слава Україні(‘슬라바 우크라이늬’, 우크라이나인에게 영광을)”를 외치는 몇몇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내가 봤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고요함과 자코파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특수성은 보편성이라는 가치를 처참히 뭉개버린다.
연극은 그 두 가지가 우리의 세계에 함께 공존하게 한다. 과거와 현재, 허구와 현실, 언어와 언어, 당신과 나를 자유자재로 유영하며 연극은 극장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렇게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는 경계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언어와 비언어가 모두 일치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러시아어와 영어, 그리고 어떤 무언의 용기라도 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은 여전히 깨질 듯 아프다.
2015년 11월,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그녀, 헬리카 리델은 연극을 하느라 아무도 죽이지 못했다. 이듬해 리델은 그날의 테러에 대한 연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과감히도 스스로가 학살의 책임자임을 자처한다. 그 말을 신뢰하지 않고 체포를 거부하는 가상의 경찰에게 그녀는 공연을 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 밤 총을 난사한 건 자신이었을 텐데 하고 말한다. 작품 속에서 리델은 프랑스에 대한 이민자들의 기이한 동경, 이방인으로서 그 나라에 와 받은 시선과 같은 프랑스의 위선을 고발한다. 리델이 이렇게 강력하고도 위험한 연극을 만드는 것은 저 죽음들을 진정 아파하기 위해 세계를 직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많은 이들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 불쾌감의 근원에 대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땅에서도 많은 아픔이 일어났다. 2014년의 봄, 수학여행을 앞둔 설렘으로 가득 찼던 나의 중3 교실은 충격 속에 고요를 맞이했다. 그것은 일종의 테러였다. 고의성이 없는 강압적 테러. 슬프고 안타까웠던 당시의 감정은 나이가 들며 점차 분노로 바뀌었다. 권력에 휘청이는 정부 인사들과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언론들, 그리고 그 모든 탓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어른들을 보며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의 발치에도 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8년,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의 코앞에서 발생한 세종병원 화재는 또다시 그들의 정치싸움으로 번졌고, 2020년 이태원의 무질서와 대응, 책임 전가는 또한 우리나라의 참상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는 아파하고 기억하고 막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게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바람과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모여 학교와 극장에서 많은 공연예술이 탄생했다. 이것이 예술의 순기능이자 그들이 슬픔을 감내하고 해소하는 방법이다. 한때 생생했던 실체는 많은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거쳐 세상에 잔존한다. 글을 쓰며 이 모든 것이 연극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 대화가, 죽은 사람들이 만나지 못한, 오늘이 되어버린 나의 내일이었다.’
나도 작가처럼 공연을 보자마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매우 싫어한다. 작년 여름,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본 후에 다음 날까지 집에 박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내 감각을 전함으로써 변질되고 가둬지는 휘발성이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을 뜨겁게 만든 공연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만 펼쳐졌던, 어느 시점에 종결되어 앞으로는 다시 느끼지 못할 그 시간예술은 대체 불가하다. 그래서 그것은 항상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므로 슬픔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해마가 존재하는 한 모든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행복을 고스란히 느꼈던 감정은 점점 아득해져서 슬픔으로 변질된다. 사랑도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행복과 슬픔을 차례로 마주하며.
공연예술은 그것이 발생하는 오직 그 시간 속에서만 유효한 채 관객이 각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 예술 속, 어떤 연극은 시대의 실상을 고발하며 스스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연극 속에서 다수는 피해자가 되어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내뿜기도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현재라는 공간에 존재함으로써 서로를 인식하고, 소멸하는 순간부터 이 형체는 기화되어 어떤 기억으로 변환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모두 연극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도 어느 극장에서는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우리의 삶을 연기하고 있고, 혹은 연기로서 우리의 삶을 목도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