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함께 숨 쉬는 시간들
심장 가까운 곳에 붙은
투명하고 작은 스티커 하나
그게 뭔지도 모른 채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3일에 한 번씩
그 스티커는 조용히 교체되곤 했다.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당하기에도 벅찼던 날들이었다.
며칠 후, 고통은 갑자기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전류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했고,
누군가 내 근육을 안에서 긁는 듯한
기괴하고 끈질긴 통증이 시작됐다.
딸을 낳을 때 8시간의 진통도 견뎠지만,
이건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주치의에게 겨우 말을 꺼냈고,
그제야 그 스티커가
‘마약성 진통제 패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언제까지 붙여야 하나요?”
물었더니, 선생님은 짧게 대답하셨다.
“아프지 않을 때까지요.”
하지만 내성은 빠르게 찾아왔고,
패치의 용량은 점점 올라갔다.
복용하는 약은 늘어만 갔고,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과의 마라톤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밤이면 엄마가 간병 침대에서
지쳐 잠들고,
나는 환자복 주머니 속에
거즈를 숨겨두곤 했다.
이불을 덮은 채,
그 거즈를 이로 꽉 깨물고
소리 없는 울음을 삼켰다.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있었고,
말하기조차 미안한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땐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그때의 나는
가시에 찔린 듯 날 서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날카로운 말들을 뱉곤 했다.
아픔이 나를 괴물처럼 만들까
두려웠다.
내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내 통증이 심상치 않음을 아시고,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시다
통증의학과 진료를 받아보라 권하셨다.
서울대 통증의학과 소견서를 받고
더 강한 진통제를 복용하게 됐다.
내 삶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굴러갔고,
나는 그 고통과 묘한 동거를 시작했다.
불쑥 찾아오는 송곳 같은 통증,
다리를 베는 듯한 칼날 같은 고통에도
나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예전에는 아프다는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내 고통을 이해해 주는 엄마에게
조용히 털어놓는다.
숨기지 않고, 꾸미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나는 통증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숨을 쉰다.
가끔 실없는 농담에 웃기도 한다.
이 고통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게 하려면,
내가 먼저 웃어야 한다는 걸
배워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픈 사람들 곁을 지키는 가족들이 있다.
이 글을 빌려,
그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당신들의 존재는
누군가에게 삶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나를 살게 해 준 우리 엄마.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