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요

조용히,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 이야기

by 다락방지기


다치고 난 후,

나는 내 다리를 짐처럼 느끼기 시작했어.


이제 이 다리는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졌고,

내 감정은 쉽게 제어되지 않았어.


이름보다는 ‘하반신마비 환자’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

어디에도 온전히 나로 설 수 없다는 감정이

나를 짓눌렀지.


그땐 이제 결혼 6년 차였고,

남편과 아이랑 미래를 설계하며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어.


‘앞으로 나는 집이 아닌 병원이 내 집이겠구나.’

‘나는 다시는 내가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밀려왔어.


무서웠어.

그리고,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까 봐…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외면당할까 봐…

그 불안이 하루의 공기처럼 날 감쌌어.


모든 걸 잃었다는 상실감.

그게 생각보다 더 깊게, 더 날카롭게 날 괴롭혔던 것 같아.


그래도…

나는 ‘살아야 한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어.

눈물은 셀 수 없이 흘렀고,

내가 잃은 것들을 하나씩 헤아리며

마음속 어딘가에 깊이 묻었어.


그럼에도 나를 일으킨 건,

나보다 더 큰 상실감을 안고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부모님이었어.


그리고

함께 자라던 딸아이와 웃으며 살아가던

일상으로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지.


침대 곁에서 쪽잠을 자시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엄마.

툴툴대는 말투로 마음의 가시를 내뱉던 내게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던 그 시간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다 잃은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었구나 싶어.


나의 엄마, 남편, 나의 가족.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내 자신까지도.




휠체어에서 스스로 앉기 위해

온몸의 힘을 다 쏟아야만 했던 그 시간들.


몇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한 끝에

겨우 바닥에서 휠체어로 혼자 앉는 법을 익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노력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다치기 전이라면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쉬운 일들이었겠지.

지금은 혼자서 똑바로 눕는 건 가능하지만,

엎드려 눕는 것조차 몸의 반동을 이용해야 겨우 가능해.


그런 내게도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을 수 있는 날이 생겼어.

물론, 가끔 박자가 맞지 않아 바닥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온 힘을 다해 휠체어에 앉으려 노력하는 용기도 생겼지.


혼자서 휠체어를 밀고 외출하는 일은 아직 거의 없지만,

가끔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갈 땐

이제 더 이상 고개를 푹 숙이고 숨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도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


글을 쓰며 숨을 토해냈고,

글을 쓰며 아픔으로도 숨을 쉬었어.


그 조용한 한숨들이

어느새 작은 숨결이 되어

나를 살아가게 해 줬어.


이제는 그 시간을

나의 말로 꺼내어 줄 수 있게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숨지 않았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어.


노력했던 시간들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어.


지금도 나는 여전히

휠체어에 앉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그 시간들이 내 안에 ‘숨’이 되어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해 줬거든.


그리고 이제는,

나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조금씩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나는…

끝내 숨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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