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동색

같은 색의 두 온도

by 김태규

초록은 동색

같은 색의 두 온도

Two Temperatures of the Same Green


ㅡ 김태규


1

같은 침묵의 방향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아

다른 하루를 접는다


말을 꺼내기 전

컵의 물이 먼저 식고

식은 쪽이

먼저 괜찮다고 말한다


너는 묻는다

이만하면 오래 온 것 아니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고개가

어디를 지나왔는지는

굳이 남기지 않는다


부부란

닮아가는 사이라지만

우리가 닮은 것은

마주치지 않는 각도


다툼이 줄어든 날들마다

우리는

같은 침묵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집 안을 오래 버텨주었다


밤이 되면

불은 하나씩 꺼지는데

잠은

항상 같은 시간에 오지 않는다


등을 돌리고 누워

각자의 생각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을 때

이 방에는

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남아 있다


우리는 오늘도

함께 있었고

서로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사랑을 연장하는 방법이었는지는

내일도

굳이 묻지 않을 것이다



2

서로를 덮는 쪽으로


우리는 같은 식탁에 앉아

하루의 끝을 나눈다


네가 먼저 묻는다

많이 힘들었냐고

나는 대답 대신

국을 한 숟갈 더 뜬다


말은 적어도

손은 바쁘다

수건을 접고

청소기를 밀고

불을 하나 남긴다


부부란

닮아가는 사이라기보다

서로의 속도를

기다리는 일


다툼이 오려는 순간에도

우리는

먼저 온 쪽이

조금 비켜선다


네가 비키면

내가 감싸고

내가 늦으면

네가 대신 말한다


밤이 깊어도

잠은 급하지 않다

숨이 고르면

같은 쪽으로

이불이 당겨진다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이기지 않았고

서로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게

사랑의 증명인지

사랑을 이어가는 방식인지는

굳이 나누지 않는다


다만

같은 색으로 남는 일이

서로를 숨기는 게 아니라

서로를

덮어 주는 일임을

알고 있을 뿐



[작가의 말]


이 연작은 같은 관계 안에서도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온도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나란히 놓고 바라본 기록입니다. 한 편은 거리를 유지하는 닮음에 머물고, 다른 한 편은 돌봄으로 확장되는 닮음에 닿아 있습니다. 같은 색이 언제는 보호가 되고 언제는 체온이 되는지, 독자께서 자신의 관계와 겹쳐 천천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