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임

Blink Without a Sentence

by 김태규

깜박임

Blink Without a Sentence


ㅡ 김태규


파일을 열어 둔 채

제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커서는

벽에 박힌 못처럼

빠지지 않고

눈만 깜박이고 있습니다


한때는

한 줄이 밀려오면

의자가 먼저 뒤로 밀렸습니다


지금은

밤만 길어졌고

아무것도 밀려오지 않습니다


쓴 것보다

지운 시간이 더 많습니다


종일

빈칸만 늘려 놓고

무언가 해낸 얼굴로

목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번아웃은

꺼진 화면이 아니라


켜 둔 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창을 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깜박임 하나가

이 자리를

끝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 먼저 화면을 차지하는 날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는 시간까지도 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깜박임 하나가 남아 있는 동안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라고 여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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