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장래희망은 사라지고, 나는 출근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

by 제드 Jed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릴 적, 이 질문은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다.


우주비행사, 만화가, 선생님,

혹은 노래하는 사람.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기보다,
그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침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전날 회의에서 남긴 메모를 다시 확인하며
‘해야 할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누가 봐도 ‘어른’이고,
사회적으로는 ‘직장인’이라 불린다.
하지만 마음속의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정말 이걸 하려고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했던 걸까?”


책상 위엔 ‘꿈’ 대신 ‘실적’이 놓여 있다.
엑셀 시트의 숫자가 나의 하루를 결정짓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단어를 조절하는 게

일상이 됐다.
가끔은 내 이름보다 ‘박 과장’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점심시간, 동기들과 식사를 하며
별것 아닌 농담에 웃지만,
속으론 조용히 되묻는다.
“정말 이 일을 앞으로 10년, 20년 더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고,
내가 좋아하던 것보다
조직이 원하는 것을 먼저 익혀야 했다.


“적응도 능력이야.”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 위로인지
이제는 안다.


퇴근길, 지하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어릴 적의 내가 떠오른다.


파란색 색연필로 별을 그리고,
수첩에 또박또박 장래희망을 적던 아이.
그 아이는 지금의 나를 보며 뭐라고 할까?


“이게 우리가 바라던 모습이야?”

아마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떨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잠시 접어둔 것뿐이라는 걸.


그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잠시 내려놓았을 뿐이다.


마무리하며


출근길마다 마음 한편이 허전한 건,

잊었다고 믿었던 ‘꿈’이
아직 그 어딘가에 살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어릴 적 장래희망을 접고
출근이라는 현실을 펼친다.


하지만, 가끔은
그 접어둔 꿈을 다시 꺼내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다시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출근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