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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Jan 25. 2024

24. 1. 25.

1월 넷째 주 생각들

<1>

이전에 글을 배웠다. 첫 만남은 남천동이었다. 뭐든지 첫 시작은 다소 들뜬 공기가 내 코, 귀, 머리카락 주위를 서성거린다. 내 몸도 조금 붕 뜬 듯한 설렘. 잘 왔구나 싶었다. 이내 글쓰기 강습소는 광안리로 장소를 옮겼고 한동안 거기서 매주 글을 배웠다. 지금도 못 쓰지만 그땐 아예 형편없었다. 지금 그때 글을 보면 눈을 질끈 감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워 곧장 카우스 커서를 x에 놓고 클릭하게 되는 글. 그래도 그때 썼던 글은 좋게 말하면 지금 쓰지 못한다. 그리고 늘 어딘가로 떠나던 때였으니 그 말랑한 감성들은 지금 따라가려 해도 흉내 내는 것 밖에 되지 않겠지. 아무튼 그렇게 글을 배우다 집안 사정으로 글 배우는 걸 관두게 됐다. 주말마다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됐다. 그렇게 글쓰기 수업은 자연스레 과거의 일로 빛을 잃게 되었다.


<2>

글은 치우치기 쉽다. 특히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더 그렇다. 글은 창작의 영역은 내 손에 있으면서도 올바른 방향키는 타인에게 있는 기묘한 속성이 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감상이 더해져야 비로소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게다가 글은 주기적으로 써야 한다. 글쓰기는 굉장히 예민한 영역에 있는 일이다. 글과 관련한 생각을 멈추게 되면 내가 쓰는 단어, 문장이 그 수준에서 멈추게 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가진 단어가 가라앉게 된다. 한 번 가라앉은 내 어휘나 단어를 다시 찾으려면 한참을 내려가서 주워와야 한다. 그래서 좋든 싫든 매번 글을 쓰거나 문장을 읽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올해 시작할 때 한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3>

매일 자정, 관리자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다음 자정이 오기 전까지 200자 내외로 짧은 글을 작성해야 한다. 오늘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은?' 나는 유독 오늘 글쓰기가 굉장히 힘겨웠다. 생각해 보니 보통 난 대화가 테니스라고 치면 서브를 받는 사람이더라. 그러다 보니 늘 '공'을 가진 상대방의 요즘 고민이나 상태가 대화의 주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보통 내가 물어보는 쪽이지, 질문을 받는 쪽은 아니었더라. 그리고 내 인간관계는 좁고 깊다. 이미 날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게 궁금한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문을 가진채 다른 사람들의 글을 봤다. 난 오늘 질문 자체로 힘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랑 다르게 사람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취업 어디 할 것인지, 누군가는 왜 시골에서 사는지, 누군가는 왜 결혼을 빨리 했는지에 대해 썼다. 나처럼 질문 자체에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같은 질문, 그러나 다양한 온도의 답변들이 꽤 흥미로웠다.


<4>

취업을 해서 창원으로 오기 전, 이미 난 E에서 I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매일 신나고 팡팡 튀는 E의 삶은 이젠 시끄럽고 피곤한 하루였다. 예전 다듀 노래에 있는 '시끄러운 클럽보다 산에 가고파'라는 가사가 공감이 된다랄까. 서면을 가면 눈이 번쩍 뜨이고 살아있는 에너지를 받았는데 지금은 실시간으로 기가 빨린다. 어느새 그런 인간으로 변모한 내가 진해에 정착한 지 벌써 3년 차다. 진해라는 조그맣고 따듯한 모닥불 같은 동네는 내 I성향을 한껏 끌어올렸다. 일을 마치고 부산에 갈 일이 없을 땐 아예 뱀처럼 똬리를 틀고 집에 앉아 하루종일 혼자 보낸다. 진해는 건물이 낮고 차가 없어서 계절이 좀 더 가까이 보인다. 한 풀 꺾이는 날씨도, 느닷없이 부는 칼바람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따뜻함도 차가움도 살갗에 더 가까이 닿는 동네다. 차로 3분 집 앞 소죽도찜질방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로 활기를 불어넣고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린 뒤 시동을 켠다. 뜨끈한 물을 넣은 보온병과 컵라면을 가방에 챙긴 채. 근처 식당에서 김밥을 하나 포장해서 찜질을 즐긴 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테라스에 앉는다. 짠 바닷바람이 한껏 들이키면 정신이 번쩍 든다. 부스럭거리며 수프를 뜯고 면에 물을 부으면 뭉근한 김이 눈앞을 스친다. 앞엔 바다가 보인다. 행복하다. 이런 하루도 좋고 어쩌다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날엔 내가 가장 애정하는 해안마을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오에프오에프에 간다. 사장님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원두 그램수까지 재어 일정하게 내려주는 커피, 그중에 난 롱블랙을 가장 좋아한다. 구수하고 진하고, 아주 자기주장이 또렷하다. 이러다 보니 진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두 번째 고향 진해를 다음에 더 자세히 다뤄볼까 한다. 내가 실제로 방문했던 곳을 엄선해서 말이다. 진해는 벚꽃을 걷어내면 오히려 더 깊고 다채로운 것들이 많은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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