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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May 30. 2024

25. 5. 30.

오월 다섯째 주 생각들

<1>

수난구조 출동이 있었다. 해식 동굴 내부에 사망자를 발견했다는 신고였다. 벼르고 있던 수난출동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갈고닦았던, 작년 여름부터 쉴 새 없이 바다에서 팔을 젓고, 풀장에서 입영을 하고, 장비를 차고 물에 들어간 이유가 바로 이런 출동을 위해서였다. 열심히 배웠던 만큼 자신이 있었다.


<2>

그런데 장소가 뜬금없는 해식동굴이었던 이유는 그곳에서 사망자를 봤다는 발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센터 관할인 진해구 웅동에 그날 오전 실종자 수색 출동이 있었다. 50대 남성의 자살이 의심된다는 신고. 그의 마지막 모습은 인근 산으로 올라가는 cctv 화면에서 볼 수 있었고, 그가 쓴 유서와 산으로 올라가던 길에 그가 입었던 양말, 옷들이 버려져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뜬금없이 오후에 발견되었고, 그가 경찰에 전한 얘기는 이러했다. 자신은 산 근처 해식동굴에 숨어있었는데 그때 시체를 봤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경찰은 동굴에 익수자가 있다고 하니 와서 확인을 해달라고 소방청에 지원요청을 한 것이다.


<3>

슈트를 입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가슴아 뛰지 말렴' 얘기를 해도 잔잔한 울림은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조금 긴장하고 있다고 내색하긴 싫었다.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연습하고 훈련했다. 내심 떨리는 한편 드디어 그렇게 훈련했던 것들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다. 곧 구조대도 도착했고, 함께 해식동굴 인근까지 접근할 배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배가 파도를 만들며 달려왔다. 해경이었다. 해경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수면이 낮아 접안이 힘들다고 했고, 우선 본인들이 동굴로 접근하여 실제로 사망자가 있는지 보고 그 후에 구조요청을 하든지 결정하겠다고 얘기했다. 배는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멀어졌고, 곧 해식동굴에 가까워졌다.  배에 있던 해경 두 명이 바위로 성큼 뛰어내렸다. 그러나 해식동굴에서 해경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베개와 때 묻은 티셔츠였다. 생활쓰레기를 익수자로 착각한 것이었다.


<4>

김이 빠졌다. 심신 미약 상태에 빠진 구조대상자가 헛것을 본 모양인지 그곳엔 사망자는 없었다. 슈트를 입고 대기하던 내게 주임님이 "하늘아 혹여나 시체를 발견하더라도 최대한 만지지 말고, 많이 쳐다보지도 말고 바로 시체낭에 넣어라."라고 했던 말이 무색했다. 작년 여름 내내 훈련했던 수난분야를 여태 써먹지 못한 게 내심 아쉽긴 하지만 '사건 사고가 없는 세상이 좋은 거지' 생각하며 짐을 싸고 센터로 복귀했다.


<5>

우린 사람과 맞닥뜨리는 직업이니 아는 게 많아야 한다. 익수자라도 외상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로 구조방법이 달라질 것이고,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로도 구조방법이 확연히 바뀔 것이다. 그때마다 적절한 방법으로 구조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구조자의 수준에 달려있다. 내가 모르면 딱 그 정도까지 처치를 할 수밖에 없다. 아는 게 많으면 구조대상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구조자의 신체능력이 우수하면 구조대상자를 더 혹독한 환경에서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현장에서의 다양한 변수를 통제할 수 있고 없고는 순전히 구조자의 능력에 달렸다. 그러니 배우고, 훈련하고, 갈고닦아야 한다. 언젠가 현장에서 처음 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봤다. 난 그런 내 모습이 한참 동안 부끄러웠다. 그런 순간을 점점 줄여가는 게, 현장에서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게, 내 손짓과 발짓에 망설임이 없어지는 것이 내 현재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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