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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May 14. 2024

24. 5. 14.

5월 셋째 주 생각들

벌써 다가온 오월의 셋째 주를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담는 글

<1>
건강검진을 다녀왔다. 창원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문진표를 작성하려 하니 이전에 같이 근무했던 주임님이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고 검진을 마친 뒤 같이 밥 한 끼 먹었다. 곰탕을 사주셨는데 뜨끈하게 잘 넘어가는 게 이제 나도 공식 아재 등극했나 싶다. 마냥 맛있어서 좋아했던 국밥에 '소화가 잘되기도 해서'라는 이유가 붙은 이상 아저씨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주임님께서 곰탕을 사주셔서 커피를 한 잔 샀다. 인사하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또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관계를 어려워하는 내가.

<2>
주임님은 늘 좋고 반가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 덕분에 기꺼이 출근을 하고 싶었다. 정말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어쩜 저 나이대에도 허울 없고, 솔직하고, 따뜻한지. 오늘도 밥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주임님께 "혹시 센터에 별난 사람 없습니까" 하니 "그런 사람 없다, 다 착하다" 하시길래 난 속으로 '주임님이 착하니 그렇죠'라고 생각하며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아주 진국이었다. 내가 소방관이 되어 첫 팀에서 주임님을 만난 건 무척 행운이다. 저렇게 늙어가면 되겠다는 이정표가 되는 사람을 감사하게도 처음부터 만날 수 있었으니까.

<3>
검진을 마치고 헌혈을 했다. 집돌이답게 내일 절대 집 밖에 나오지 않겠다는 의지로 할 거 다 하고 갔다. 헌혈은 지금까지 23회를 했다. 30회 하면 상을 준다. 난 30회를 얼른 채우고 이 상을 받고 싶다. 헌혈로 상을 받아보는 게 뜻깊을 것 같고, 지금 채우지 못하면 언젠가 그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 참고로 탈모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헌혈 못 한다. 난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 안타까운 시기가 올지 모르니 얼른 30회를 우선 채우고 맘 편히 헌혈하고 싶다.

<4>
요즘 곽튜브 여행기를 정주행 한다. 여행작가는 빛바랜 내 오랜 꿈이다. 알 사람은 알 테지만 내 꿈은 여행작가였다. 사람마다 흥미가 판이하게 다르다. 유튜브 계정만 바꿔봐도 서로 다른 관심사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거다. 내 추천 동영상엔 여행 영상이 많다. 사실 소방관이 된 직후엔 내가 여행작가가 되지 못한 안타까움에 여행 영상을 가슴 아파 보지 못했는데 (누가 보면 비운의 프로여행작가인 줄 알겠다), 지금은 어째서인지 술술 넘어간다. 나도 모르게 현실과 꿈 간의 벌어진 격차를 인정하고 연고로 발라 새살을 채운듯하다.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다. 결국 목구멍에 넘기지 못할 과거는 없다. 아무튼 그렇게 몇 개 보기 시작하니 밥 먹을 때, 쉴 때 쭉쭉 이어서 보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흘렀다. 언어에 흥미가 있는 사람, 스포츠에 흥미가 있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이 있듯 각자 흥미가 다른 듯한데 난 아무래도 여행에 흥미가 부쩍 큰 듯하다. 이유는 없다. 여행이 좋고, 즐겁다.

<5>
올해 상반기 흐름이 좋다. 작년 하반기 열심히 준비했던 게 하나도 안 돼서 우울했다. 사는 게 다 이런 거 아닐까. 안 될 땐 안 되고 잘 될 땐 잘 되고. 이 흐름에 말을 얹고 싶지 않다. 안 되면 언젠가 될 거고 잘 되면 기분이 좋다. 열심히 하면 설령 안 되더라도 뭐라도 남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맘이 편하다. 나 같은 글쟁이들은 안 되면 글로 써서 소재로 만들면 된다. 이렇게 오월의 절반도 접히고 있다. 가로수 잎이 더 푸르게 변하고 해가 더 쨍쨍해지면 지독한 모기도 더 많이 오고, 반가운 여름 공기도 함께 방문하겠지. 금세 찾아올 한여름에도 이런 온도로 글을 쓰고 있길.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기분 좋은, 딱 적당한 온도로. 소박한 바람을 적어 여름밤에 흘려보낸다. '오늘만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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