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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포인트 Dec 07. 2023

실리콘밸리는 왜 국가안보와 제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을까

자본의 흐름은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CNBC는 지난 9월 미국 VC들이 자국의 항공우주와 같은 국방, 안보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바일앱, 크립토 등 비트(Bit) 기반 스타트업에 수많은 자금을 투자했던 미국 VC의 투자 방향이 달라진 배경은 무엇일까.


1990년에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고 이듬 해 소련 연방이 해체되었다. 국가적 이념보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게 된 세상이 온 것. 마침 월드와이드웹(WWW)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사람들은 연결, 교류, 소통, 정보 공유의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2010년대에는 모바일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며 작은 손 안에서 극강의 고객경험들이 혁신되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정보 교류를 넘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우리의 자산도 이제는 중앙화된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마저 커져 갔다. 이런 시대 흐름을 2011년 안데르센 호로위츠(a16z)의 수장 마크 안데르센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묘사했다.


그런데 2020년 팬데믹이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디지털 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코로나가 국가와 산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시킨 영역이 있다. 바로 제조∙생산이다. 코로나는 엄청난 국가 이기주의를 보여줬던 사건이었다. 백신 생산국들은 수출 문을 굳게 닫고 자국민부터 챙기기 바빴다. 공급망이 단절되면서 자유무역은 자연히 뒷전이 되었고 보호 무역체제가 어느 때보다 강화되어 갔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총성없는 무역전쟁은 날로 심화하는추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도입하며 전기차와 배터리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도록 했다. 중국이 개발한 틱톡에 대해 사용자 정보를 중국에 넘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며 고강도 퇴출압박을 하는가 하면, 중국 기업에게는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중국 역시 이에 대한 보복으로 공무원들에게 애플의 아이폰 사용을 금지하고,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 대미 수출 제한에 나서며 맞불을 놓고 있다.


경제블록화 현상은 투자시장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던 마크 안데르센은 2020년 “It’s Time to Build”라는 제의 칼럼을 썼다.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검사키트, 음압병실 부족 등 미국 내 제조∙생산시설의 부족 문제를 절감한 그는 지난 10년간 소프트웨어 산업에 비해 소외되어 왔던 자국의 제조∙생산∙건설을 지적했다. 특히 제조업에서 효율 극대화를 위해 핵심부품이나 제품을 해외 공장에 위탁 생산해왔던 분업 행태에도 주목하며 이제는 우리가 직접 만들 때라고 주장했다.

           Source: Mark Andreessen, Andreessen Horowitz 홈페이지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첨단 제조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며 “American Dynamism”이란 국가적 아젠다를 제시했다. 국가안보, 우주항공을 비롯해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한 반도체, 배터리, 양자컴퓨팅 등 첨단 제조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테크와 마켓에 집중했던 기존과는 전혀 다른 스탠스다.

            Source: Andreessen Horowitz 홈페이지


온∙오프라인에서 국경없이 자유롭게 교류했던 시대가 위축되고 있다. 기술패권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이제 우리 손에 잡히는 하드웨어는 자국에서 직접 제조∙생산하자는 기조로 세상은 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미국 기업들의 중국 첨단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양자컴퓨팅, 인공지능, 반도체 3분야의 투자를 제한하며 중국의 첨단기술 역량 확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기술력을 확보한 국가가 시장의 패권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 완벽한 패권자가 나타나지 않은 미래 유망 기술 영역에서 주도권 다툼과 그에 따른 경제블록화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반도체, 전기차 등 제조 기반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지정학적 환경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급변하는 정세 흐름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우리 사업의 활로를 적극적으로 찾으며 위험관리 역량을 내재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유럽, 동남아, 인도 등 동맹국 또는 정부와 우호적인 국가들을 중심으로 공급망 다변화 체계를 마련해두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정학적 수급위기에 한 발 앞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급망 관리의 디지털 전환을 모색해보는 것도 대안이다. 빅데이터 및 AI 기반 디지털 물류 플랫폼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공급망을 최적화시킬 수도 있다.

Source : rawpixel.com


글로벌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터넷과 자유무역의 발전에 따라 점차 가까워지기만 할 것 같았던 세계는 다시 두 개의 덩어리로 분열되며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의 애덤 포센 소장은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2020년대는 세계가 점차 더 블록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패권경쟁과 보호무역주의는 전 세계가 상호 의존했던 분업 기능을 약화시키고 자국의 첨단 제조기술력 강화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이는 딥테크 스타트업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변화하는 지정학적 긴장감을 기회로 바꿀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대외환경에 대응하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Written by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

Edited by  임혜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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