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스핀오프 스타트업의 성공 레시피
"스타트업은 당신 스타일이 아니야. 당신은 베팅을 잘 못하거든."
스핀오프 파트너인 저에게 스타트업 스타일이 아니라는 아내의 말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항상 베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을 만나고 액셀러레이팅 업무를 하면서 제가 내린 베팅의 의미는 불확실한 상황을 수용하고 빠르게 결정하며 실패를 하더라도 견딜 수 있는 유연함과 단단함이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수많은 보고 채널을 거쳐야하고 다양한 유관부서의 검토도 받아야 하지요.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두들겨야 하는 돌다리가 너무 많습니다. 베팅을 경험하기 힘든 조직문화이죠.
반면에 스타트업은 존재 자체가 불확실이며 베팅입니다.
스타트업에서 모든 돌다리를 두들기리란 불가능하지요. 매 순간 빠른 속도로 PMF(Product Market Fit) 를 검증하면서, 동시에 Scale-Up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 출신의 창업자는 대기업 조직문화에서 빠르게 벗어나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시장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빠른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작은 실패를 많이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또한,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Co-Founder와 팀원, 조력자를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스핀오프 제도를 통해 스타트업 창업의 길을 선택하려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 다양한 질문이 쏟아집니다.
“초기 투자금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스핀오프 시에도 지금 누리는 대기업 복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나요?”
"재입사 시, 스타트업 근무 기간은 상위 평가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재입사 후, 원하는 조직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요?”
분명 스핀오프 기회를 통해 스타트업 창업을 희망하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인데, 사업의 성공보다는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질문을 계속 받으니 힘이 빠졌습니다.
대기업에서의 경험은 대체로 안정적인 우상향 그래프를 그립니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연봉이 꾸준히 오르고, 새로운 기회도 주어지며, 개선된 복지 혜택도 누립니다. 위기를 감수해야 할 상황은 드뭅니다.
반면,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은 어떤가요? 적어도 제가 만난 대표님들은 ‘안정’이라는 단어보다는 ‘위기’라는 단어에 더 익숙하셨습니다.
지금 보면 스핀오프 지원 제도에 의존하지 않은 팀들이 더욱 빠르고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표님들은 스핀오프 제도가 없어도 당연히 창업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입사와 같은 안전장치가 있어 스핀오프 시 팀원들과 가족을 설득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이런 제도를 고도화하는 것도 좋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내벤처 스핀오프 제도와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임직원들이 대기업 에이스의 우상향 그래프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리스크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면 스타트업 창업은 포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스핀오프는 대기업 에이스를 육성하는 제도가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임직원을 통해 신사업 채널을 발굴하는 기업의 공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투자입니다. 개인의 경험 확장을 지원하는 복지가 아닌 야생의 리얼 게임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앞선 아티클 읽어보기
대기업 에이스는 '좋은 창업자'가 될 수 있을까? - 上
Written by 이인성
블루포인트 수석심사역. 삼성전자 사내벤처 C랩 파트너 출신의 첫 번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이다. 다양한 오픈이노베이션 사업 협력과 스핀오프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으며 현재는 블루포인트 창업혁신팀에 합류하여 컴퍼니빌딩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