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가득한 여름이 좋다.
나의 우울은 해가 떠있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해가 길 수록 우울감이 얕아지고, 해가 짧을수록 우울감이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여름에만 살아있다.
여름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지 한참이 됐다.
매년 여름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란다.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이 가장 설렌다.
벚꽃이 지면 ‘곧 있으면 여름이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여름을 뺀 계절의 색깔은 무채색이다.
특히 겨울은 흑백이다.
겨울엔 기억력도 흑백처럼 흐려진다.
내 인생에 색깔이 있는 때는 정말로 여름뿐이다.
생각해 보면 난 참 운이 좋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매년 볼 수 있으니까
여름의 청량함과 싱그러움, 살아있는 풀과 나무, 다양한 색깔들, 뜨겁게 피는 아지랑이, 모든 걸 부숴버릴 수 있는 태양의 뜨거움,
바다의 시원함, 끈적거리는 땀내,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 이빨을 얼리는 얼음조각, 등짝이 서늘한 신작 공포영화,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 에어컨 빵빵한 카페 안 창문, 알록달록 네일들, 가벼운 옷차림,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
꽉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부는 뜨거운 여름바람, 선풍기 회전하는 소리, 매미울음소리, 손등 위로 올라오는 햇빛 알레르기까지
여름이라는 이유로 모든 게 좋아지는 날들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빨리 와라 여름아
나는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