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준 Apr 06. 2024

6. 자연을 담다.

몸과 마음을 자연에 온전히 담아보면 특별한 느낌과 감정, 때로는 아련한 추억이 스치곤 합니다. 그것을 음악에 담아내는 이가 있고, 문장에 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각예술이란 도구를 통해 담아냅니다. 간혹 그 모든 것을 즐기는 예술가도 있죠. 담아내는 도구만 다를 뿐, 어쩌면 예술적 갈증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다 글을 쓰고 시를 쓰는 일이 종종 있답니다.


이젤을 펴고 의자에 앉아 자연의 색과 빛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시간도 좋지만, 자연 속에 담겨 노래를 부르듯 흥얼흥얼 가볍게 스케치하는 것을 추천해요.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에, 습득해야만 하는 문제에, 직장의 업무에, 틀에 짜여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 깊이 파고드는 무거움보다는 자연에 담겨 소풍을 즐기듯 순간순간의 감흥을 빠르고 가볍게 스케치해 보는 겁니다. 


저희가 야외스케치에서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파스텔, 목탄, 연필, 볼펜, 사인펜, 분필입니다. 종이는 두꺼운 도화지 보다는 얇은 드로잉북을 사용해요. 연필, 펜 종류는 외곽선 위주로 그리게 됩니다. 외곽선으로 그리기는 정형화된 그림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조심스럽게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이유로 연필과 펜을 사용할 경우엔 빠른 크로키로 시작합니다. 5초 10초 등의 시간제한을 하면 도움이 되어요. 몇 장을 그렇게 그리고 나면 특별한 제한 없이도 자유롭게 그리게 됩니다. 관념적 그리기에서 탈피하는 것으론 왼손 오른손 바꿔 그리기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재밌어요. 분필은 그림보다는 바닥이나 돌, 바위 등에 낙서하는 용도로 사용해요. 비 오면 씻겨 내리니 부담 없답니다.


파스텔과 목탄은 매우 매력적인 재료입니다. 보통은 파스텔을 더 많이 사용해요. 파스텔을 눕혀 색을 넓게 칠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외곽선 없이 자연의 색상만 주워 담는 느낌으로 그려요. 마치 종이 위에 낙엽을 붙이고 나무껍질을 주워 붙이듯 색상을 주워 담는 거죠. 두 가지 이상의 색을 덧칠한 후 비비면 멋진 색상배합이 펼쳐집니다.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색상의 향연을 느껴보시길.


목탄은 세워 사용하면 선을 긋기에 적합하고, 2센티 정도로 부러뜨려 눕혀 사용하면 풍부한 농담의 넓은 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도 좋지만, 파스텔과 혼용하면 재밌답니다. 파스텔과 목탄으로 그린 후 연필이나 볼펜 선을 올리는 것도 멋져요.


자연의 색을 탐색한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일인데 이 시대의 아이들에겐 더욱 그러할 겁니다. 스마트폰과 모니터와 네온사인에 먼저 익숙해진 세대인지라 인공색상을 원본으로 여기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많은 경우 유튜브를 통해 그림을 배우기도 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색상 배합하는 방법을 배우고 구도와 테크닉 등을 배웁니다. 자연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과 경험은 부재한 채 정답만 외는 방식입니다. 누가 봐도 멋지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타일만 남았을 뿐, 그림을 그리는 ‘나’는 사라진 예술 활동이예요.


이 세상엔 고유의 색이 없다고 하죠. 색깔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빛에 따라 달라져요. 사진 촬영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태양광에서 촬영한 것과 인공조명에서 촬영한 것이 달라요. 백열등에서 촬영한 것과 형광등 밑에서 촬영한 색상이 달라요. 빛이 사라지면 색도 사라지고 검은색만 남죠. 오죽했으면 Claude Monet 는 오전에만 그리는 그림과 오후에만 그리는 그림을 달리했을까요. 


시시각각 변하는 마술 같은 자연의 색을 탐색하고 도화지 위에 옮겨 보아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색상배합을 시도해야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색 배합을 찾아내게 되고, 상황과 감정과 대상에 따라 어떤 색을 사용할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가르쳐준 색의 배합과 일치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누구와도 다른 “내가 담긴 그림”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종종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는 작업 활동뿐만 아니라 세상을 느끼고 탐색하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고민의 시간을 예술작업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사라지고, 대상은 소유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연 속 주체로서 나와 마주하고, 특별한 감정을 전해주는 무생물도 여느 생명체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자연 속에 폭 파묻히기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도시에서 마주치는 물질도 이전과는 다르게 마주하곤 합니다. 자연에서 마주치는 특별함을 빠르게 담아냈던 것처럼, 흙 묻은 자동차나 녹슨 연장이나 뒤축이 닳은 신발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하곤 그림에 담을 수 있습니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야외스케치를 할 수 있고,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죠. 하지만, 그 시작은 자연임을 우리 잊지 말아요.    


[산] 종이 위에 파스텔.   2021년 김사랑(초3)

산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의 색상이 짙어요. 사랑이는 그것을 정확히 보고 표현했습니다. 선생들도 사랑이의 그림을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2023년 겨울산 산책 중, 사랑이의 낙서 (초5)

[민들레] 종이 위에 목탄, 크래용.  2022년 김사랑(초4)



[산] 종이 위에 목탄    2021년 권순혁(초3)

아래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순혁이의 야외스케치입니다.


건물보다 높은 위치의 강아지, 실제 사진이 아니면 잘못된 그림으로 파악하기 쉽습니다. 이 구도가 지닌 독특한 느낌을 기억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어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담아낼 대상의 느낌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선의 느낌이 달라지는 순혁이의 그림입니다.



A: [풍경1]  골판지 위에 파스텔   2022년 5월 15일 준경(초2) 

B: [풍경2]  종이 위에 파스텔      2022년 5월 15일 준경(초2) 

작업실 안에서 그리다 보니 관념적 구도와 색상이 나와 야외로 나갔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인 풀밭 위의 꽃 세 송이만으로도 그림이 이렇게 변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자연은 울창한 숲속이나 이국적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아래는 2023년 가을을 담은 김별(초4)의 야외스케치입니다.


마지막 그림은 사랑이 언니와 놀이를 하듯 집의 색상을 마음껏 바꾸어 그렸습니다.



아래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승민(초6~중2)이의 스케치입니다.

파스텔에서는 부드러움을, 붓펜에서는 명료함과 강렬함을. 그리고 마지막 그림(전지 위에 물감)은 사춘기에 접어든 승민이가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비내리는 창밖을 보며 그린 작품입니다. 



아래는 홈스쿨링하던 예지의 야외스케치입니다. 자세한 관찰을 통한 구체적 묘사와 단순화라는 추상적 표현이 함께하는 작품. 홈스쿨링을 해서인지 정형화된 표현이 없는 친구입니다. 2015년~2016년 사이에 그렸던 작품으로, 당시 예지는 초4~5학년이었습니다.




아래는 2015년, 초2 당시 임유빈의 작품입니다. DMZ 평화공원에서 수업하던 어느 날, 나무의 다양한 생김새를 설명해 주자 폭풍처럼 스케치를 이어갔습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나무 작품을 그렸어요. 유빈이의 특징이 있다면, 선생이 무언가 제시하면 서네 번 반복하는데, 그 결과가 마음에 들면 꾸준히 되새겨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다양한 생김새의 나무를 그리다가 마지막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그렸어요.








아래는 이미 대학생이 된 홍담이의 작품입니다. 2015년~ 2017년 사이, 초4~6학년에 그렸던 작품입니다.

2015년  사인펜과 파스텔


1016년 파스텔과 오일파스텔

2015년  켄트지 위에 볼펜, 박스종이 위에 사인펜.

2017년 켄버스 위에 유화

2015년  검정종이 위에 오일파스텔

2015년  종이 위에 펜과 파스텔

작가의 이전글 5. 자연에 담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