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준 Jul 16. 2024

7. DIY 키트, 그 씁쓸함에 대하여.


초등학교 2~3학년만 되어도 “저는 그림을 못 그려요"하며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미술학원에서 도화지를 꽉 채우는 그림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그럴싸한 형태와 묘사력까지 배운 친구들을 봤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실주의 회화작품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잘 그리지?”라는 감탄까지 합니다. 잘 그리는 그림에 대한 그릇된 환상이 이미 심어졌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그러한 환상에 한 발짝도 디딜 수 없는 자기 능력에 좌절하곤 그림 그리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들기에선 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그림을 못 그린다며 자괴감을 드러내던 아이도 “만들기는 잘 할 수 있어요"하며 달려듭니다. 블럭 놀이하듯 이리저리 쌓고 붙이곤 “부앙~” “쿵!” 하며 놀이를 시작합니다. 대체로 남자아이들이란 특징도 있지만, 더 두드러진 점은 미켈란젤로나 로댕의 작품으로 특정되는 ‘사실주의적 조각품'을 ‘만들기의 목표'로 여기지 않다는 것이에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이 영향을 미칩니다. 풍경화 그리기 따위의 그림대회는 있어도 ‘찰흙으로 인체 빚기'와 같은 대회는 없습니다. 그리기 수업은 유치원과 학교에서 많이 다루지만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룹니다. 정형화된 선입견을 적게 심어준다는 것이죠. 수업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자연물을 주워 조합하는 작업입니다. 자연물을 보고 연상되는 형태를 결과물로 끌어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업이에요. 이런 놀이작업에 익숙한 아이는 다양한 사물을 조합하여 상상력을 결과물로 뽑아내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다시 말해, 만들기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구로 다룰 뿐, 정형화된 예술의 결과물로 다루지 않았기에, 그래서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역설적 결과를 보입니다.


물론 자유로운 만들기에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아이도 있습니다. 조립식 키트를 사용하여 만들기를 한 경우예요. 키트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제시된 길을 따라가면 멋진 결과물이 기다리고 있어요. 모든 세부 묘사는 공장에서 찍혀 나왔습니다. 상상력을 펼칠 필요가 없고, 그러니 펼쳐진 상상력을 결과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고, 세부 사항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세부 사항을 표현하려면 방법적 상상을 펼쳐야 하고, 그 상상을 현실화하는 노력은 고되고, 그 고된 노력을 반복하여 발전시키는 과정은 지난합니다. 그리고 그를 우리는 실력이라 일컫죠.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됩니다. 실력을 갖출 기회가 박탈당한 셈입니다.


조립식 키트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무엇을 만들지에 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재료를 처리하는 방법적 상상력도 부재합니다. 저희 수업에서 종종 경험하는 경우인데, 무엇을 만들지 상상했어도 원하는 재료가 갖춰지지 않으면 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풀밭 위의 동물을 만들려면 공장에서 찍혀 나온 풀밭이 있어야 작업이 가능합니다. 주변에 놓인 다양한 재료를 어떻게 조합하고 가공하여 풀밭을 연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과 고민을 해본 적이 없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노력하여 만들었어도 공장에서 가공된 기성품과 비교해 초라하다며 실망하곤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만들기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키트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구상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요. 아이들은 주어진 방식대로 만들며 부분의 선택지를 고르는 정도에서 끝납니다. 결과물이 실제 생활에 유용하지도 않기에 부모들은 ‘쓰레기로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어 왔네'하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재활용품을 이용한 작업이라 하여 재료가 반드시 재활용품만으로 구성되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나무를 사용할 수도 있고 도화지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재료일 뿐이죠. 파스텔이나 물감이나 목탄과 같이 재료로서 존재하는 것일 뿐, 그들을 어떻게 섞어 사용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열어주어야 합니다. 


결국 그림그리기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는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다양한 재료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음식을 만들건 칼을 만들건 자신의 이야기를 한껏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즉 내용에 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재료 사용과 구체적 표현 방법에 대한 상상력까지 펼쳐져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이 신나게 이뤄지고 난 후에 필요에 따라 선생이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지속되는 작업에서 편향된 재료를 사용한다면 폭넓은 재료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재료 사용의 제안과 한계를 권하는 거죠. 다양한 재료 사용이 표현을 폭넓게 이끄니까요. 


[화장실] 파스타, 물감  2015년 한승 (초1)


[우리들의 놀이공원] 보드 위에 압정, 고무줄, 철사, 단추, 빨대 등   

2014년 송연아, 송윤주, 임유빈 공동작업 (초1)


[사람을 잡아 먹은 괴물]  재활용품과 나무   2022년 송재민 (초5)


[쓸모를 제거한 재구성] 재활용품  2021 송재민 (초4)



[붉은악마} 지점토와 재활용품  2023  송재민 (초6)


[구미호]  천과 솜   2024  송재민 (중1)


[새-집] 실, 나무, 지점토  2017 연아(초4)


[바다]  재활용 캔, 퍼니콘, 아크릴물감.    2023 순혁(초5)





 홈스쿨링했던 예지의 2016~2017년의 작품으로, 당시 초5~6학년의 나이었습니다.




임유빈의 작품으로, 2015~2016년 (초3~4)에 제작한 작품입니다.


2015년 당시 초2였던 송윤주의 작품. 목장갑의 일부를 잘라내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하였답니다.



2016당시 초6이었던 김홍담 학생의 작품입니다. 버려진 기계부풐을 이용하여 재구성하는 것을 즐겼어요. 첫 사진은 마블 캐릭터 중 하나이고, 두 번째 사진은 홍담이가 무척 즐겼던 구성이었으며, 세 번째는 상상의 생명체를 만들어 보았답니다.


2023년 초4였던 오화영의 [스키 타는 강아지] 

작가의 이전글 6. 자연을 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