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금하지 않나요?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중순, ‘내가 한 사랑‘을 자성해 보았다. 사실 조속히 잊히기만을 바랬지만,
기억이란 흐려지면서도 까다롭게 주위를 맴도는 것!
내가 좀 더 세련되지 못했던 것, 내가 상대방이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당시에 보자마자 그렇다고 믿어 버렸던 건 제일 뼈아픈 실수였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고 아무리 외면해도,
온몸이 무너져 내리듯 아팠다. 그리고 실제로 병이 났다.
아픈 건 시간 흐름으로 극복되었지만
부족한 현금 흐름은 늘 머릿속 고민으로 남았다.
결국 그때 샀어야 했는데 못 산 걸 몇 해 동안이나 고민의 구렁텅이에서 보냈을 정도인데, 그런데 인간은 얼마나 습관적으로 실수하는지, 실수에서만큼은 얼마나 꾸준히도 성실하게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러 가자면 특별히 치장에 신경 쓰고 메이크업을 공들이지 않나.
그렇듯이, 내가 공을 들이는 만큼 종목도 늘어나고
관심 대상이 풍부해지고 그러다 보면 적절한 가격에 무언가를 잡을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아, 공부가 덜 되어서 잘못 찍었다고요? 그래도 전재산 걸진 않았을 거 아녜요? 국민연금도 물가 상승률만큼은 올라가는데 기회를 보아 파신다고 생각한다면 따라는 오지 않을까요?
한 해가 간다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온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아몰랑” 하면서 옷 사는 것도 나쁘다는 건 아녜요.
아, ‘돈 없다.’고요.
그 이름은 ‘빈자’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명저)의 ‘부자’, 그 반대말!
맘 아프게도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얼마야?” 이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질문 자체를 순삭 하는 분들이 많다.
생각의 레퍼토리들이 비슷비슷한 분들이다.
그런데 챗GPT에게 질문 한 번만 해 보면
정보를 아는 건 어렵지가 않다.
문제는 1. 모든 것이 궁금하지가 않은 것(열정 부족),
2. 궁금함을 잘 지나쳐 버리고 금세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집중력 부족),
3. 경험, 그것도 성공 경험의 절대 부족, 세 가지이다.
솔루션은 ?
‘앱을 깔라.‘이다. 수많은 어플들을 내 폰에, 결국은 내 손안에 들어와 있도록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간 부족과
안목 부재를 커버해 줄 어플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들 대부분의 휴대폰에는 아직 기존 자신들이 써 온 어플들만 빼곡할 뿐이다.
‘땡‘이 뭘까? 아는 사람은 아는 그것이다.
강의를 들으러 갔다. 오랜만의 나들이 같은 심정이었다. 길 미끄러운 건 질색이어도 그날 눈이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설레었다.
그 강사(?)를 두 번째 수강하러 간 것은
궁금한 걸 참지 않고 기어이 해 보려고 하는 심사가
나로선 참 잘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충우돌한 만큼 경험치가 쌓여 왔고 네트워크가 풍부해진 스토리는 나를 충분히 가슴 뛰게 한다.
물론 빗댄 것이다. 그 강사님을 연모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내 돈이 나가서 일하고 그렇게 불린 돈으로 다시 투자해서
대신에 “그게 죄”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투자한다고 말하지 말고 그저 관계를 매끈하게 이어가자.
또 내가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는 게 좋아.”라고 이야기한 후에 어쩐지 그가 나와 소원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깎인다면 앞으론 모르는 척 하자.
요런 ‘인사이트’가 쌓여 간다.
마치 내가 회사 일이 이전보다 가볍게,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모종의 투자로 인해서
내 쌈짓돈이 불어난 ‘자본 이득‘을 본 다음부터이듯이 말이다.
돈이 자신의 미래에 부족할 듯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나를 꼼짝달싹 못 하게 가두는 이들은
그 소극성이야말로 ’돈에 관한 자기 결정권‘(위 책, 199쪽)을 없앨 원인임을 알았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내 생각과 다르시다면 님이 맞으신 거다.
어차피 난 그렇게 살기로 했다.
참고로, 강의를 골라서 듣게 된 데에는 남 탓 할 이유란 없다. 액면 그대로이다.
요게 뭔지, 어떻게 들어가면 되는 건지 궁금하면
조금씩 해 봐야 되지 않나요?
굳이 굳이, 궁금증을 참지 말고 말이에요.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 하네, 할 줄을 모르네,,,
그럴 수 있지만,
자기가 돈을 잘 운용하지 못한 면은 없는지
연말이라 모임 통장 번호가 날아다니는 와중에도
한 번쯤 돌아보는 게 어떤가, 나 자신부터 해당이다.
그에게서 돈을 보내라는 뜻으로 계좌번호가 날아왔을 때 나는 ‘이건 아닐 것’ 임을 알고도 그가 요구한 대로 돈을 보냈다.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안정감 외에는 가질 수 있는 게 없다.“(위 책, 189쪽)
마음이 안 좋은 것 역시 며칠간의 내 몫이었다. 살다 보니 사람를 만나느라 한 세월을, 또 지우느라 다른 세월을 보내는 게 이게 맞나 해서였다.
한동근이 부르는 ‘너 하나 너 둘‘은 중독성 있다.
그러나 ‘뭐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인 나- 눈치채셨겠지만 이는 물론 검증되지 않은 내 생각이다-를 멈춰 세우고,
그가 받아간 건 ’ 미래의 돈’이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뭔가 될 수 있었던’ 그와 나 사이의 유대를 앗아간 돈의 미래 가치가,
얼마인지 나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적은 돈으로 보다 큰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 말이다.
돈, 돈, 돈은 하면서도 늘 ‘사람 앞에 돈을 놓지 말자.‘는
기준은 여전히 확고하다.
‘신뢰‘는 단연 인간관계의 기초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