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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Feb 28. 2024

16. 내려가라는 한 마디 말을 듣고 내려온 그

- 고립된 사람에게 부당함의 끝은 부정당한 인사(人事).


그러니까 내려 가라구요



일을 많이 갖고 있으면 일복이 많다고 한다.

그게 복인지 몰라도

그는 할 수 있는 최대의 일감을 몰아 갖고 있었다.


그가 그 자리로 배치되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날조차

사실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고

일에 몰두하고 다른 생각이 없는 그를 잠깐 만나

우리가 말없는 허그를 나눈 장면을

그후로도 나는 여러번 되감아 보곤 했다.


그가 자기입으로 자신이 내려왔다는 소식을 전한 것도 사건이 벌어지고 반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국장이 그를 불렀고

그렇게 아프면 내려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단다.

그는 병가를 원했고 그 국장은 강등을 제안했는데 

너무 아팠던 그가 자서를 해 주고 나왔다는 것.


자서가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일으킬 때

당신이 이자 납부를 삼개월만 연체해도

은행이 소송 같은 절차 없이도

당신 주택을 가져가서 팔아 버릴 수도 있음을

‘듣고 이해했’다고 확인하고 하는 그 자서.


그는 자신이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 일을 돌아봤을 때

국장과 그 배후 인원들이

그의 자서를 받아 놓았다고 했을 안도의 크기보다

더 크게 자신이 당황할 지점이 된 협상이었다고

술회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지?’하고 말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니고

‘아프댔잖아?‘



내가 아프고 나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의 이야기를

새롭게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강등에 관한 이야기를 우회해서

내가 알고 있는지도 알 겸 건네는 사람들이

또 그 단어, ‘왕따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어디나 안 맞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방에서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대부분 밀리게 된다.


아침에 탕비실에서

자기들끼리

인사하고

깔깔거리고

맛있어 하며 나눠 먹으면서

나한테 아무도 말을 안 건다.

그 뿐인가.

내가 들어서면 말을 그친다.

딴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생각하는 단계는

초기엔 있었을지 모르는데

나중엔 모두 걱정 면제자들이 되어

걱정 붙들어 맨다.


신경 안 쓰는 것이다.


첫째는 내 배후가 별 거 없기 때문이다.

위의 그도 그렇게

자기 페이스만으로, 자기 호흡만으로

거대한 조직의 한 몫을 해 내려다가


발병했을 때 취약해지자

한 번의 협상에서 밀리자


다 잃고 굴러떨어져야 했다.


둘째는, 자기들끼리 다져졌기 때문이고

써클이 강고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라고 거론될 만한 사람도 없지만

전문가가 되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문적으로 일하려고 해선

까딱하는 순간에 무장해제된다.


사람들은 모두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환경에 지배당하면서도 지배당하는지 모른다.

분위기가 그래서, 영, 중요한 것이다.





제일 힘든 게 뭐에요?



생각만 해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여기선 거의가 잘못이 없다면,

비위만 안 저질렀다면

강등은 없다.

우리 조직은 명분이 강하게 작동하고

사람의 이름값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거의가 인맥이다.

학연, 지연, 친분, 그리고 의리.

그 어디도 끼지 못하면

사달이 났을 때 유효하게 방어하지 못한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묻고 나서 나는 ‘아차’ 했다.

물어봐야만 아는 게 아니었다.


같이 시작한 사람들이 잘 되는 걸 아는거, 보는 거.


예전 타이틀로 이름 뒤에 OOO 과장님 이라고 그를

계속 호칭해 주는 사람은 1~2% 정도다.

격하된 것이 맞다.


그러니 예전에는 지시하고 가르쳤던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거나 심지어 역전도 일어난다.


큰 일을 했던 사람이 작은 일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케이스는 드물다.

다 ‘그릇’이 있는 법이니까.


그건 실로 감당키 어려운 영역이다.

고통이 되고 질병을 유발하며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낙담시킨다.





일 안 하는 사람들의 ‘워라밸’은



세상이 다 워라밸이란다. 그건 좋지만,

평소에도 힘을 가지려고, 힘에 붙으려고만 했지 

전문적으로 열성을 다해서

자기 일처럼 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나는 ‘공멸’이 올 거라 생각, ‘썩는다’고 말했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빼먹은 건축물이 무너질 상이듯

모든 일이 시늉만 하다가

하루 이틀 보내고 분기를 연도를 슬렁슬렁 다녀도

나는 아무 손해 날 게 없다.


정권이 바뀌고 집권당의 정책이 바뀌고

내려오는 기관장의 색, 성향이 달라지면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다는 듯이

돌아가고 만다.


그 속에서 아까와 같이

일에 파묻혀 있다가 집단에서 튕겨 버리는

‘천상’ 공무원이 나온다면


그의 선택지에는 한 가지가 남는다.


“도저히 혼자서는

해결 가능하지 않으므로

단념하기.“


그 일들을 다 겪고


계속 근무를 하노라니

생각이 파도치고 마음이 일렁이지만

와서 얼굴을 보고 대신 울고 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어쩌겠는가.

삶은 고스란히도 내 몫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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