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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r 03. 2024

17.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해?

- 폐지 수거 노인을 보면 마음이 영.


원조 오지라퍼




사회가 비대칭적이라고 듣고 안다.

마음 어두워지는 일이 눈 앞에 나타날 때가 있다.


잘 되는 사업은 엄청 잘 되는 것 같은 한편

‘임대 문의’ 광고가 붙은 건물을 보면

잘 안 된다는 거다.

1층에 공실난 상가, 사무실이 많은데 어찌 된 일인지.

그 공간을 사용하던 사업주와 임대인의 경제적 관계는 어떻게 됬을까.

사업은, 장사는 왜 잘 안 됐을까.

잘 됐으면 안 나갔지, 안 비어 있겠지.


보통 이 정도 생각하고 살던 날

폐지 수합하는 노인 분의 리어카를

도로에서 피해 지나갈 때였다.


마음이 안 좋은 거다.

저 분은 저렇게 해서 하루 얼마 버나.

침식(자고 먹기)은 어디서 하시나.

원래 뭐 하던 분이었을까

자식들은 있을까. 자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등등


옆엣사람에게 나의 큰 혼잣말이 들어갔나 보다.

내가 “나도 저렇게 될까 겁난다.” 하니까

그러는 거다.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냐는 거다.


“너 참 오지랖 넓다.”는 말은 덤이다.






나는 원래 좀 그랬다.



빈곤과 궁핍이 아이들의 시야를 가리고

어른은 조급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힘들다.


어느덧 우리 사회,

돈에 따른 층위를 매기는 게 당연시된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각자의 시간을 채워 가는데

격차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나.


모르겠다. 상위에서 하위를 내려다 보는 각도에선

뭐가 보이는지.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곤 한다.

갈수록 돈으로 즉각 환금할 수 없는 재화나

인간의 마음씨 같은 것들을

그게 뭐 중요하냔 식으로 여긴다.


기초노령연금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안 되어

리어카를 끌면서 폐지를 주워야 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있긴 할까.

나처럼 아직 그 연세가, 그 입장이 되지 않은 사람이

그저 안타까워 한다고

뭐 하나 달라지는 것은 없지.


격차가 9대 1이나 그 이상이라고

느껴지는 세상을 살면서


내 일이 아니라고 밀어내 봐도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들썩이는

그런 일은 꼭 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이 그 하나다.

어째야 돼.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now/1926402






산 사람은 살아야제



큰 일을 겪고 도저히 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나

할 때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너무 억울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못 이뤄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억울하면 안 된다,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

고민 고민하다가


서서한 시간이 다 정해 준다는 것을.


끌고 가는 것은

-모진 자책미련한 애정-이고


버리고 가는 것은

-끝내 되돌릴 수 없어서 내려놓는

추억과 한 줌 후회-다.


그 뒤로는 살아야 한다고,

살았으니까 살아야 한다고 해서

계속 가는 길이 되겠다.

거기엔 고난도 없겠지만 만족도 없다.

늘 그게 그거다.


그래서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빼 버리면

정체성인 ‘일’을 뺏어 버리면


맥을 놓은 그의 남은 날들은

그 날이 그 날이 되는 것이다.


그밥에 그나물 같은 거랄까.


뺏은 사람은 모른다.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그들은 알지도 못한다.






한 마리 새가 죽은 동료를 찾았다



차 핸들을 살짝 우로 비틀었다.

차창 앞 도로에는 죽은 새 한 마리가 있고

그 새에게

닮은 새 한 마리가 내려와

부리를 대어 보는 찰나였다.


뒷차가 위험하다고 경적 소리를 내는데

다른 이유에서 마음이 두근거린다.

새들이 동료를 찾기도 하나?


괴연 도시에서 날개 달린 새가 왜 죽었을까

오지라퍼는 궁금해진 끝에

유리창 충돌’에 대해 알게 된다.


https://m.ecomedia.co.kr/news/newsview.php?ncode=1065600526209668


사람은? 옆엣사람이 분명히 아픈 걸 알아도

다 주검처럼 되어도


그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대어 보는 행위에 있어서


인간은 왜 그다지 인색한가


자신이 다칠 일도 없고

감수해야 할 위험도 당장 크지 않은데

그래도 남을 위해서는 굳이,

- 설령 그사람이 죽은 자처럼 숨을 못 쉬더라도 -

인간은 끈 떨어진 연의 끈을

애써 다시 달아주지 않는다


외면하는 게 편하고

잠시 불편함은 오래 가지 않기에

나만 아니면 괜찮기에


눈 질끈 감고 피하면

시간이 가게 되어 있고


망자는 다시 숨쉬지 않는다.

승자은 기억되고 패자는 지워진다.

그게 인간이고

우리가 다니는 직장이란 데다.


자신들과 내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내 어떤 아픔도 힘듦도 모욕도

이해되거나 와 닿지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편이 갈릴 때, 층이 나뉠 때

똑같이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사람이란들

그가 자기랑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파도 되지만 자기는 아프면 큰일난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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