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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r 03. 2024

18. 잃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 보수적으로 살아야 할까


확률이 몇 퍼센트가 되면

행동에 들어가도 될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 있다.

무엇을 하든지 계획-실행-피드백 단계는 있고

모든 단계와 모든 순간에

선택’이라는 과정은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하면 하는 것이고

내가 그것을 하게 되면

하지 않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나는

선택하지 않는 선택과

그 ‘포기’로 인해 내가 남길 수 있는

, 비용, 또 기회비용, 마음의 한적함 등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온다.

고민할 시간은 종종 충분하지 않다.





바위에 계란을 치는 사람



잘 될 확률이 삼십 프로라고 말하면

그걸 듣고 흡족할 사람은 매우 적다.

그것도 러플리(Roughly) 삼십이면 감은 좋지 않다.


확률이 적은데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하지? ’라고 남들이 의아해 할 텐데?

정답은 달리 없다,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이다.


승률이 안 좋은데 그걸 해야 하는 마음은

복합적(complexed)이다.


인상 쓰지 않고 너는 그래라 나는 상관없다

하지 못했음을 자책,

네가 이마저마 했으니  인정할 것 인정하고

나한테 납작 엎드려라 하는 미련


그런 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다.


그런데 그런 자책괴 미련 암만 떨고 부려 봐도

벌어진 일을 안 벌어지게 할 수는 없는 거다.


그렇다면 왜 굳이 내 비용과 내 시간을

거기 더 들여야 할까.

확률이 낮은 게임은 시작을 안 해야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니?


더구나 바위에 계란을 치면

계란은 온 몸이 부서져.


여기까지 생각하고

또 나야 ? 하는 의문이 꼬꼬무 놀이를 한다.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결국 도망은 못 가고 결정을 내렸다.


이건 혼자 해야 해. 내 몫이거든.





이게 아프지 않다면

뭐가 아픈 거에요?



고데기‘ 하면 뭐가 떠올랐을까 생각 안 난다.

다만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 (2022,2023) 이후로는

확실하게 더 글로리만 생각나게 되었다.


“이게 뭐가 아프니 ?”라고 하면서

동은이의 살에 고데기를 대던 연진이들을

우리는 화면에서 봤다.


그걸 나는 직장생활에서 겪었다.

‘당했다’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는

두 눈을 뜨고

내가 배제되고 고립되어 무력해지는

과정 하나하나를,

‘고데기’를 번갈아 잡은 여러 손들을

다 지켜 보았기 때문이다.


위기는 위험의 결과값’이라고 했던가.


한 사람 두 사람이 내가 뭐 아프겠나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인사를 안 하고 피해 다닐 때

그 빠른 번짐이 그야말로 일파만파가 될 때

나는 인간 심리의 야만과

동물보다 인간이 되먹지 못한 점의

목격자였다.


지난 주 나와 길을 걷다가

십년째 펫을 키운다는 분이 말했던 게 뭐였냐

(펫이) “사람보다 나아요.”였다.

심쿵했다.


하여튼

저렇게 하면 한 달도 안 걸리겠는데 예상했는데

깃발을 올렸던 과장이 한 달 여 만에

다 이겨놓은 싸움이란 듯이

내게 말했다.

너를 내쫓아 버리겠어’라고.


그게 특유의 야비함 묻은 톤에 묻혀서

윗사람 답지 못한 격 없는 워딩을 담고 발성이 돼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두 사람이 독대하긴 커서 윙윙 울리는 소회의실도

장소적으로 한 몫 했다.





‘나처럼 살지 말아라’가 아니고



엄마들이 딸들에게 많이들 되뇌었다.

나처럼 살지 말으라”고.

딸들은 또 엄마에게 쏴붙였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뭔가 대한민국 세계적 고속성장의 이면에서

엄마와 딸들 사이에 묵계가 있었나 보다.

‘한’이 느껴진다.

그래 이쯤 되면 ‘한’인 거다.


아픈 델 혼자 가서 병 치료할 때

다 나으면 다시 그들과 예전처럼

친한 척 시시덕도 해야지 하는 맘? 절대(일도) 없었다.

병원 문턱을 넘고

하염없이 많은 환자들 틈에서

특유의 메스껍고

배도 안 탔는데 배멀미같이 뭔가 토할 것 같은

속을 누르면서


병원 수납대 오른쪽에 놓인 텔레비젼 화면 우측에

세로로 뜨는 대기자 목록에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내 이름과

위아래의 다른 환자들 이름을 응시하면서

나는 내가 만난 ‘연진이’들 이름과

그들의 너부데데한 얼굴들이

교차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말해 줘야지.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일하다가 사람들이 쏜 총을 맞고

병원 문턱 넘으면서

말캉한 눈물을 쏟은 과거의 나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

할 것이 아니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


건강, 의욕, 사람을 사랑할 이유 ..

그런 것을 잃고는

무엇을 가지고도 보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었다.


그런데 또 확률은 받혀 주지 않는다.


한 마디로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도,

보수적으로 판단해서 하지 않았을 때보다

나아지는 게 없을 것 같아서

고민이 되는 시간.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면서

하나의 원칙만 남기기로 했다.


내가 힘들어도 끝까지 길을 갔을 때

누군가 다른 사람은 병원엘 가지 않아도 될 수 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났지만

죽었다 깨는 사람들 대부분이 생각한다.

누구도 이 아픔을 겪지 말았으면.

이건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는 절대 고통이다.


‘응답하라 1988’ 속 이 노래가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올 때


https://www.youtube.com/watch?v=KgCWTU3tCxg

노을이 불렀다. 제목은 ‘함께’


나는 어쩌면 이 결정이

내가 시련을 정말로 극복하는 최종 단계가

될 것 같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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