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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r 06. 2024

19. 사람을 어떻게 버리니

- 한 마디 미안하다고 한 사람


“치어 죽기보다

커리어를 부숴버리는 게 낫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한 일이

처음에 책 읽기였다.

처음 도서관에 책을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서가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책등을 바라보는 데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누우면 잠이 안 왔다.

가슴이 뭉클하거나 저며 왔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일들이 어디까지라는 걸

온갖 경험치에 기반해서

그걸 다 생각하고 조명해 봐야

한숨을 잤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뇌가 각성 준비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PTSD(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하고

 자가진단까지 해 봤다.


트라우마 사건이 뇌 회로 속에서 반복 재생되면서

수면이 부족했고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나의 생각과 여러 감정을 느끼는 지점들을

자극하고

서서히 고양시켰다.     


책을 갖고 와서도 그걸 읽는다는 게

처음부터 쉬웠던 게 아니었다.

 그저 하얀 바탕, 검은 글씨였다.


침체에서 걸어나오게 해 준 책의 하나, ‘치어죽느니 커리어룰 버리자‘


우리가 모두 도덕적이고 완전한 존재는 아니라지만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을까 싶었던 ‘도전자’가 있었다.


질서가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 제 나름 틈을 잘 찾아 기어 오르더니

금새 눈 깜박 하는데 코를 베어 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상하 관계로는 다시 만나지 않을 관계로

도전자와 나는 끝이 났다.

경쟁자로 인정할 수 없었던 도전

내가 단칼에 잘랐는데

그게 너무 늦은 일이었고 따라서 소용이 없었다.


이미 도전자와 나의 기 싸움은 파다하게 퍼졌고

그 추이를 지켜볼 필요도 없이

대세나 분위기로 인해

승부가 나 있었다.


그해 말쯤 됐을 때

도전자는 나를 밀어내고

스스로 잘 풀리는 중이었고

이긴 자만이 가능한 아름다움으로

벌써 포장하고 있었다.      


‘고래 싸움이다, 새우등 터질라.'

해서 슬쩍 등을 돌리고

개입에 따른 감정 노동이나 시간 낭비를 

피했던 사람들

자신들의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승리한 도전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 방식은

과장이 자신의 업무 과실을 덮으려고 할 때에도

역시나 잘 통했다.

모두가 익숙한 게 그런 방식이니까.


내가 봤을 때

이도 저도 싫고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은 사람들은

희망이 없긴 하지만,

승자는 다같이 선호했다.


몇 안 되던 장점마저 복수심, 질투 때문에

잃어버린 과장은 때마침,

알량한 지위로, 직급으로

나를 눌러서 이기기 위해

도전자를 이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기서는 팀이라는 것이 없고

조직관리도 없었기 때문에

성과와는 애초 거리가 멀었다.


‘한 성깔’하긴 해도

확실하게 조직 내에 가진 힘이 없었던 나는

사람 좋기만 했던 리더에게

어떤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강함’은 내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리더는 그냥 리더였다.


과장이 자기 최대 이익을 위해 일을 꾸미는 동안

리더는 최대한 다른 곳을 보려고 했고

나중에는 몰랐다고 했다가

아예 그런 일이 없었던 것으로 취급했다.


리더의 그런 행동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그는 그렇게 충성스러운 나를 버렸다.     





훼손된 삶



‘슈룹’(2022년)이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김혜수가 말했다.

“신의도 지켜야 하고 목숨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둘 다 지키는 벙법으로서

과장에게 치어서 혹은 깔려서 죽기보다

커리어를 부숴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매우 위험도가 높고

영구적인 후회를 남길지 모르는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얻은 상처가 너무 컸고

그것을 관리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이

그 어떤 업무 성과보다 절실할 만큼

모두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나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잘 해도 본전이었다.

한번 생긴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일을 이제까지도 번번이 겪는 중이다.

  

어느날 리더였던 그가 나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무엇이 불편했는지, 앞뒤 다 자르고

“할 말이 없다.”라고 했다.

그것이 미안하다는 뜻이겠지 라고

이번에도 나는 좋은 쪽으로 봤다.


이제 나는 하얀 바탕의 검정 글씨가 아니라

책을 책으로 원활하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할 만큼

약자임을 공개하는것에 대한 수치심,

가해자의 앙심을 사게 되는 보복의 두려움

(‘태도에 관하여’(2015), 임경선 책, 215쪽)"을 뚫고


나는 글을 쓰고 또 쓰는 중이다.


이 와중에 ‘몰입이 구원한다.’는

말을 본 듯 하다.

정신 없이 쓰고 있노라면

거짓말 같던 이야기가

내게서 멀어져 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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