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렵고 힘든 일이 대부분이었더라도.
그의 차다.
출근길에 나는 직장 근처 도로에서
그의 차를 본다.
나도 모르게 ‘오늘 재수가 나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내 앞에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네 네” 했지만
내게 어떤 관심도 주의도
갖거나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걸
번번이 느낄 수 있게 굴었다.
그런 그도 D의 말에는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서 비위를 맞췄다.
D는 일을 가져 본 적이 없이 흘러온 유형이라서
어디서 얻어들은 이야기만 되풀이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말이 짧아서
변죽을 울리지도 못하는 위인이었다.
그러다가 더이상 안되겠을 땐
뜬금없이 동종 업무 종사자인 배우자에게 전화를 해서
비자발적 삼자대면을 시켜 대는 통에
소통은 바로 먹통이 됐다.
D야말로 가정과 직장이 양립되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언어는 그 사람의 품격“이란 말이었다.
“얼마나 힘들었니 ?”라고 물을 때면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배경을 생각한다.
나는 조직 생활에서 위 아래의 기호에
잘 맞춤된 성향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단순 좋아했다.
인간이 모두 유한한 존재이라는 공통점만 떠올려도
다 나 같지 않은가.
절절 매는 윗사람의
작은 배짱도 저렴한 기개도 나는 아쉬웠고,
우기면 이긴다고
나잇값의 반푼어치도 안 되는 얘기를
그저 해 내라고
변비 걸린 얼굴을 하고 온갖 힘을 쓰고 선 모습을 봐도
‘왜 그러고 사니‘하는 생각이 없잖아도
당신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때론 가장일 수 있겠다 해서
화를 같이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심연과 같은 처절한 현실에 봉착했을 때
선의는 악의로 돌아왔고
나 자신 외에는 나를 도울 수 없다.
그게 남은 팩트였다.
그래서 무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외롭고 따돌려진 사람은
무인도와 같은 생활을 한다.
주위에 사람이 버글거리는데
나랑 말을 섞으려는 사람이 없어서
완전히 혼자이라는 모래 씹는 기분!
그런데 안 나갈 수가 없다.
생계가 달린 직장이기에.
나는 무인도에서 탈출한 ‘톰 행크스’가
제일 먼저 여자친구를 찾아가는 건 '영화'요,
'실제'라면 병원에 종합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만나고 나서 검사를 받았겠지만.
폐쇄적이고 변동이 특히 없는
‘고인 물’ 조직이 내 직장이고
내가 거기서 좀 열심히 일하다가
외면당하고 공격당해 따돌려져서
일을 놓고 몸을 돌봐야 하게 된 이야기 역시
실화가 바탕인 저 영화처럼.
어느날 E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놀라웠다.
자세한 사정은 없이 E가 내게 보낸 요구는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액수는 못 돌려받아도 민사로 가기엔 애매한,
그냥 떼이고 마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라면 “그냥 써” 할 금액이었다.
나는 그날 알았다.
완전히 따돌려지고 나면
그 중 누군가가 나와의 지난 친분을 매개로
돈을 빌려 가겠구나!
왕따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E는 잘 써 먹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여기서의 마지막 때가 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말하겠다.
편히 살기 위해서, 하던 일만 하고 싶어서
변화를 노래부른 나를 따돌리고
조직의 건전성을 해치고 있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견뎠는지
(그들은 모를텐데,,, 비밀이지만,,)
내게는 세월 내내 변함없이
강력한 지지를 해 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이 있었고
그때 얼마나 내가 행복했는지를 나는
다 잃고 난 후에 깨달았다.
왕따 시키고 생으로 매장을 시켜버리면
내가 끝내 못 일어날 거라고 믿고 있던
그들이 갖지 못한, 그들이 빼앗지 못한
행복 회로다.
가련한 이들 같으니.
그것이 일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