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믿지 않는다.
건강을 훼손하고 지나간 왕따 사건은
나만 알 수 있는 ‘마음의 그늘’을 만들었다.
자신감까지 잃진 않았더라도
남들 앞에 나서는 게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세월 기본적인 예의마저 지키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쓸고닦고 헌신해 온 나는
앞으론, 더이상, 반복해서,
누군가가 입을 비쭉이게 하지 않으려고
강력한 자기 검열을 한다.
‘언제든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어’,
그들이 만들어 낸 소문이
발없는 말이 되어 달려올까 봐
전전긍긍은 아니어도
가능성 충분히 열어놓고 생활한다.
지금 나의 일과는
재개한 직장 생활,
건강 해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
(식사 잘 하고 운동하고 잘 자려고)
가족들과 때때로 행복한 시간을 갖는 일,
브런치에 글 발행 위해 이렇게 쓰는 일
로 채워져 있다.
거기에 단 하나,
내게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다시 사람들이 어느날 돌아서는 일을 당하면
안된다고 되새기는 일은
나의 마음에 명백한 그늘을 드리운다.
‘인생에서 소외된’(‘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인생에서 쫓겨난 기분이었다.’ 122쪽)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제도 밖’일 것이고
자신의 인생 2막이 될 것이다.
일만 했던 나, 직장에 있는 시간이
매 출근일 12시간이었던 나는 과거의 ‘나’다.
현재 ‘나’는 과거를 기준으로 보면 ‘놀고 있‘다.
일을 다시 하게 된단 생각만으로도
엄두가 나지 않고 머리가 지근지근 아플 것 같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비틀린 상호작용’이었고
어차피 남들은 내가 아픈 것이
그저 ‘꾀병’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다.
아파 본 사람이나
아픔의 크기를 아는 것이려니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수치심 같은 것이 첫째인데,
자기 일은 스무살부터는 묻지 않고 해 온
책임감 강한 내가
인생의 향방을 달리 한 결정을 ‘남들 손에 ‘놀아난‘
결과로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하나요,
둘째는 진정으로 사람을 좋아했던 유형으로서
사람이 준 상처가 깊다 보니
인간의 내면을 절대 모른다는 두려움,
배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는 불안으로
사람을 다시 믿게 될 수 없을 것으로 인해서
끌어안는 ‘외로움’이다.
병이 다 나은 것 같아도
늘 조심한다는 의미에서,
상비약을 챙겨 다니는 지금은 후유증 중이다.
즐거운 순간이 꿈처럼 깨져 버렸을 때
모두가 나를 향해 서 있다
순식간 등을 보이고 돌아섰을 때
그 충격은 파장이 컸다.
알 수 없다.
내가 아픈 것은 ‘자초한’ 것이 아니냐 라고 했던
‘도전자’의 말을 여러 번 떠올렸다.
대충대충 하고, 모르는 척 하면서, 허허실실
‘부작위’를 싫어하지 말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시간만 보냈더라면
나의 위치,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자리’는
달라졌거나 최소한 지켰을 것 같다.
과연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잘못(my fault)
이라고 생각하려면
나는 다른사람들과 똑같은,
차별점 하나 없는 인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되지 않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도 자책한다는 건
병이 낫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내 잘못과 내 착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따돌림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면
잘난 척 하는 것 같아서
‘시기와 질투’의 대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물으면
나는 ‘사랑’이라고 할 것 같다.
최후의 기쁨과 만족 때문에 난관을 이기는 사랑.
‘일‘도 사랑했고
’사람‘들 속에서 일하는 ’나‘도 사랑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된 거다.
후유증 때문에.
일은 글러먹었다. 일을 하면 아플 것 같다.
그럼 어떡하면 좋은지
아픈 기간 동안 인생 2막을 생각해 봤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했다.
답이 과연 있었다.
복귀한 후 병이 재발한 것이다.
그들 무리를 보면 보는 대로 메스꺼움이 일었다.
사는둥마는둥 명만 이어 나왔다.
사는 게 아니었다.
무엇이든 찾아야 한다면
예전처럼 ‘일하는 나’가 아니어도
‘다른 일 하는 나‘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오래 매달리다가
찾지 못했다.
알콜 중독자가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늘어놓고
매일 마시듯이
나는 변명하고 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까딱하면 이번엔 정말 죽을 수도 있는데 하는
두려움을 안고
무엇을 할 것인가 자체를 생각하길
포기하고 지낸다.
찾고 생각하고 만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