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r 13. 2024

23. 그래 내가 나를 좋아해 주자.

-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들끼리 줄을 서는 사회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따돌림도 그렇다.


우리는 강풍이 비와 함께 불어닥치는 날

뒤집어져 버린 우산을 손 보려다가

머리부터 다 젖어버린 경험이 다 있다.

우산이 있든 없든 결과는 같다.


감지되었다 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무엇을 짜고 있는지가 버젓하더라도,

(정말 유감인데)

피할 수도 없고 막지도 못한다.

당하고만 있어야 된다.


생각하면,

열띤(熱띤)‘ 사람이 도통 없는 사회에 살았다.

안 되면 안 하면 되지

어렵게 ‘빌드업(build-up)'을 굳이 하지 않는다.

남의 빌드업을 무너뜨리는 것은 기본이다.


태어날 때 인간이 혼자였던 것처첨

그렇게 내가 혼자가 된 후

시간이 얼마간 흘렀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덩그러니 내 앞에 남은 돌은,

내가 굴리지 않으면 안 되는 돌은 단 하나.


시지푸스가 밀어올려야 했던 그 바위

같은 나의 삶이었다.

내 몫인 삶.





어찌됐거나 아무도 책임질 자가 없음



공무원 선호 열풍이 한때 불었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이,

목표하는 돈의 단위 자체도 달라지면서

그 열풍은 시들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다 보니 공무원 내부에도

구세대와 젊은세대가 얽혀 있다.


늙든 젊든

일단 입사만 했다 하면

조직의 풍토나 체제상

직원의 성장 과정이, 성장 관리 프로그램이

빠져 있다. 그러니

입사 이후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주워들은 것으로도 평생 버티기 가능하며,

여기저기 끼어들고 참견은 할 만한 정도가 된다.


4살 유아의 행동거지로 일러 바치거나,

정당한 비판과 견제가 들어와도

누가 나를 ‘디스’했냐?” 하는

그런 식으로 밀어부치면


소모되기 딱 좋게, 얽히고 설켜서

균형을 잃어버리며

급기야 진이 빠져 버리게 된다.


내가 현실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짧지 않았다.

안 돌아가는, 뭘 해도 안되는

사방 막힌 구조라는 걸

일일이 부딪혀서 알게 된 것 말이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일하는 걸 좋아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손을 뗐다.


그리고 나니까 ‘삼류‘들의 무대가 됬다.

자기들이 모르는 일을 손 넣어서 하다가

‘책임지라‘는 말이 나올까 무서워

다들 도망치고 마는

그런 컨디션이다,.





피는 바꿀 수가 없다



나는 원래부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유형을 비판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단 생각이었다.


그건 사기꾼이나 떴다방보다 질이 나쁘다.


피는 못 속인다고들 하는데 우리 조직에는

내부에 흐르는 ‘피’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뀌지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QKnWpklUPco


개인의 정치적 색과는 관련이 없다

가슴 깊숙히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

(대통령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떻게 통제하겠습니까


이 말을 위 유튜브 영상(16‘ 15“)에서 보는데

‘어멋, 내 생각이야’ 했다.


1. 자신이 감당 안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심쩍은 미련,

2. “나 이 정도는 하고 있다.”라고

 대내외에 말할 수 있다는

객기 충만한 자랑.


그 두 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리를 뺏고

가로채서 선점하고

그러기 위해 처세의 달인이 된다.


2분기 물가상승률을 잡는다는 전제 하에

미국 금리를 내린다는 발표가

미 연준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정치와 경제가 긴밀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공공의 모든 섹터가

경제를 예의 주시하면서 반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사람들의 실제 영역이고

누구도 ‘돈’이나 ‘경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잊었는지?

공무원들은 바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사람들로

공개전형(시험)까지 거쳐 선발되었다.


그러나 자리에 진입하고 나면

‘성장’은 없다. ‘성장률’도 없다.

단 1%도, 2%도 성장하지 않는다.

국가 경제 성장률에 못 미친다.


강의를 듣는데 강사님이 말한다.

(여기서는 내가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베일에 싸여 있다.)

공무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아니, 일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다 터진다고 한다.


"아침에 출근해요 , 커피 한잔 해요...“ 로 시작하는

강사의 언변에 모두들 깜짝 웃음을 터트린다.

나는? 내 눈앞에는

나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속이 울렁거린다.


‘자리’만 보고 ‘자리’를 위해 걸어온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다.

혁신이 있건 없건

그의 ‘자리’는 탄탄할 예정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뭐를 하든

‘시간만 가면 장땡인’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거기서 ‘자리’는 모르겠고(그건 내 ‘복’이다.)

열심히 만들어서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customized)사업을 지향했다는

죄목‘이 있다.


그러다가 이제 내게 가장 안성맞춤인

내 삶만을 운영하고 있다.


영영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은 벗어났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돼.”


그런데..


나 같은 사람 세 사람이 이렇게 들려 나오면

백 명의 편안하게 일 (안) 하는 공무원들

더 편안하게

자신들이 ‘선’이라고,

심지어 옳다고 믿는

확증 편향을 더더욱 갖게 되고


그렇게 자기에 도취한 공무원들이

꾸리는 국가 사무란 퇴보 일로에 놓인다.

뒤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없다. 제대로 일할 사람이 ...

관리 당국은 일하는 사람을 북돋우기는 커녕

화근’이나 특별히 민감한 ‘요주의’ 관리 대상 인물로 분류하는 데 아주 재빠를 뿐


일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고,

있더라도 부상병이다.


나도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22. 나는 사람을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