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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Mar 17. 2024

24. 옷깃 스친 정도가 아니었다.

- 사람을 가려 만날 수가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직접 줄 수 없는 속사정은 그랬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많은 공문서와 메모지들, 업무안내  출력물들 속에서 편지 봉투를 발견한다.

나는 이게 뭔가 하고 열어보았다.

여러 쪽에 걸친 개인적인 내용의 편지가 나왔다.

워드로 친 게 다행이었다.

손글씨가 아니라서 그나마 나았다.


그 때의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대강의 돌아가는 상황은 보면 알 수 있을 만큼

구르고 구른 경력이었다.

일이 무섭지 않았던 것 같다.


편지를 쓴  F는 무슨 마음으로

문서 더미, 실질은 폐지들인데 그 속에

편지를 넣어두었을까.


내가 편지를 못 본 걸까?

그 위에 또 종이들을 쌓고 쌓았다가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눈에 든 걸까?


아냐. 세상에 어떻게 편지를 못 보나.

F가 편지를 묻은 것이다.


보라고 말이라도 하든지 말이다.

봐도 안 봐도 그만이라는 것일까.





편지는 직접 주세요



나는 그날 그 편지를 읽지 않았다.
내용이 긴 것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내가 읽어야 할 것인지
그냥 두고 가는 데에만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알쏭달쏭 판단이 안 갔다.


그 때의 업무 분위기 또한 일대다(1:다)가 맞았다.

우리 쪽은 많아야 서너명이었다.

이미 편이 갈라져 있었고

개인의 감정 풀이의 무대로 직장을 오인한 G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비우고

하소연을 하러 다녔다.

G는 자기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좋지 않은 예였다.


나는 G를 달래기 위해서, 딜을 하기 위해서

사적 접촉을 몇 차례 시도했으나 G는 막무가내였다. 역시 성장 과정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캐릭터였고

두손두발 다 들고 다시는 접촉하지 않았다.

G는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이리 모여라 저리 모여라 하는 사내 메신저 등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자꾸 끌어모았다.

그러는 데에는 재주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저런 성향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자신이 쥔 타이틀을 놓을 수 없는데

이유는 자기가 제일 그 쪽 방면에 특화되어

제일 잘 한다는 것이었다.

G를 안스러워 하는 사람은 있어도

G의 업무 능력을 인정하는 쪽은

절친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유사 사례를 보거나 동형 업무를 다루는 기관을 봐도

민원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업무 양태를

G는 되풀이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휩쓸려 가고 있었다.

G는 가장 동정을 샀고

그의 흘긴 눈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알아서 눈을 내리깔았다.

G의 지나간 과오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처럼 되어 갔다.


그러니 F 또한 나에게서 멀어져 간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감정이 재처럼 쌓이기도 한다.

털어버릴 수 없는 재.

F가 처음 들어왔을 때 내가 그의 적응이나 업무 파악을 도와 준 면이 있었다.

F는 그러나 사세가 G에게 기울고

자신이 최소한 중립이라는 것을 G의 편들이 알아야 자신이 안전하게 사내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내게 전처럼 다가오지 않았고

나는 멀어져 가는 F를 내버려 뒀다.


마음을 주었으나 박차고 나간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었나.


내가 근무지를 옮기게 되어 떠나기 전

F에게 편지 이야기를 처음 언급했다.

나는 말했다.


“OOO 씨, 편지를 두고 간 것이 맞죠?

편지엔 날짜도 없었고

나도 한참 지난 후에 발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저는 OOO씨에게 한 가지만 말해 두고 싶습니다.


편지는, 앞으로 쓰게 되는 일이 있다면,

직접 그 사람에게 주세요. “


그리고 나는 F의 다른 말을 듣지 못했다.





무작정 울던 그



그 당시는 사무실 분위기가 경직되어

하루하루가 천 일 같았다.


그 속에 F와 직급은 같았지만

한참 어린 친구가 한 명 같이 있었다.

그 친구는 단단함이라곤

아직 내려 받지 못한 모양이어서

GG를 추종하는 일단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냥 울어버렸다.

사무실에서 엉엉 우는 그를 바라보면서

선배이고 선임 중 선임이었던 나는

‘이게 울 일인가' 생각하면서

업무를 가져와서 직접 했다.


울음보 컸던 그나 F나 모두가

나에 대한 뒷담화나 험담을 듣지 못했을 때에는

나의 업무적 판단이나 세부적 코멘트를 믿고 따라줬다.

. 하지만 밥을 먹고 나면 커피를 마시지 않나.

짧게라도 산책을 할 테고...

뭣보다 자세한 배경은 오가는 메신저를 통해서

그들도 해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하나 둘 건성건성이 되어 갔고

마치 누구에게 몰카당할 까봐 피하듯

 상의를 좀 하고 가면 좋으련만

나와 함께 서서 일 얘기를 나누는

그런 장면을 애써 연출하지 않곤

주어진 일만 처리 후 노트북을 끄고 나가버렸다.


편지를 가져다 묻어둔 F도 그랬다.

그는 편지의 말미에

‘기도 중 (나를) 기억하겠다'고 썼다.

나는 기도는 자유롭게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자신의 마음을 행동에 담아

보여 주는 모습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F의 기도로 F의 마음은 안정되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하나 둘 저쪽 편으로

사실상 넘어가는 하루하루가,

그것도 같이 밥 먹고

같이 차 마시고

같이 웃던 사람들이

곁에서 멀어지고 남아나질 않는데

내 마음이라고 편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란 말을 하듯이

나는 그들에게 일도 줬지만

그전에 마음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버티는 게 무척 힘들었다.


사람을 자꾸 버리는 사람들,

자기라도 살기 위해서라는 걸 알지만

그들은 왜 나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가?


직접 주지도 못할 편지를 두고 간 F의 마음은

그렇게라도 해서 홀가분했을까?


엉엉 울며

갈등의 접점에서 자신만은 빠져 있길 원하던

어린 친구는

이제쯤은 울지 않고 살아갈까?





‘악의 평범성‘, 이 제목을 보고 나는


경험치들이 아주 많이 내게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몇 가지 검색을 하던 중에

시집 "악의 평범성"(이산하, 창비시선453)

을 알게 됐다.

읽다가 내려놓고 숨 한번 쉬고 다시 읽는다.


“악의 비범성이 없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다.”(89쪽)


우르르 몰려 가서 일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계에서

정작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모른다.


'정말 인간은 언제 인간이 되는가' (90쪽)



내가 과장을 미워하는 폭과 깊이는

아마도 과장이 나를 미워하는 그 폭과 깊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과장을 잘 알았고

그의 방법이 무엇무엇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과장을 인간으로서나 상사로서나

단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그냥 그는 위에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과장이 나에게 행한 보복 등이 만들어 낸

지금의 나를 두고 과장이

‘내가 뭐랬어, 감히 나한테 까불었어'라고 말하며

으스댈지도 모르지만

큰 관심은 그에게 지금도 없다.


다만 나를 아프게 한 것은

시인의 연작 '악의 평범성'에 있는

내 주변의 사람이었다가 등진 사람들이었다.


정인지, 미련인지, 한참을 토하여 게워놓고

또 떠오르는 사람은


사실은 내가 사랑한 사람일 것이다.




각자의 찻잔을 앞에 두었던 시간은 지나가고, 만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시간이 왔다.



같이 밥 먹고 커피잔을 마주 했던 그들,


그들이 나를 허공으로 날려 보낼 때

과장의 '악'을 면전에서 집행할 때

그들이 과연 '사람'이었나 싶었다.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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