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생각은 안 바뀔지 모르지만 그럼 ‘나’는?
요즘도 집 문을 닫고 나올 때 내심 놀란다.
왜냐하면, 집을 못 나와 본 사람은 알 텐데,
‘저 문을 열고 내가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한 거다. 그 때 그 날들 내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도 살아야 한다거나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럴 사이도 없이 따돌려지고
공기는 무섭게 바뀌어 갔다.
반복해서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움직임이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그들이 합쳐지고 있고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몸 안의 세포들마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프게 된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직장 사람들이, 친하지도 않은 그들이
어떨땐 ‘가나다'순으로,
또는 연령순으로,
혹은 '친소' 관계 순으로
줄줄이 떠올라서
내 마음은 늘 울어 버릴 것 같았다.
‘사람’이 그토록 중요했었나 자문해 봤다.
모두 남일 뿐인데
왜 내 인생을 바꾸려고 하지? 무슨 힘으로?
나는 천성이 활달했고
답답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실제인 듯 여겼다.
주거니받거니 건네는 농담과 제딴의 유머로
가볍게 일상을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다.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은 안정감을 줬다.
반대로, 바로 그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나를 외면하는 날이 왔을 때
나는 현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별 통보가 일방적이면
그 때의 상대방이 나와 같을까.
그런데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날이 오면
‘충격과 공포’ 속에서
나도 내 잘못을 되짚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 말 걸(껄) 그랬어...'
‘껄 껄 껄 목록‘이
줄줄이 나왔다.
그건 사뭇 고통스러운 일이다.
타인의 침해를 받고서
가해자를 지목해야 할 손가락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의 ‘죄상’을 하나하나 발라 내는 과정은
여리며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 가는 길인데
그건 사실 최악이다.
상처를 잔뜩 입고선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제 속살을
하나하나 핀셋으로 헤집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까지도 애초에 계산한 가해자라면
그는 매우 전문적이고 습관적인
마성의 '기술자'일 가능성이 크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아이고 머리야 내가 왜 거기에 걸려들었어 ’
하면서 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기회를 박차고 나면
결국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에 이를지라도,
현재 자기 능력이 여기까지 밖에 안된다는 걸
인정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사람은 자신에게만은 길을 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라.’는
말도 좋겠지만
그보다 ‘내 몸은 하나 뿐’이라는 말을
이 때는 더 잘 들어야만 한다.
살면서,
“이걸 샀어야 했어.
저걸 거절해야 했어.
그 때 그랬어야 했어"는
너무나 반복된 ‘후회 레퍼토리’이다.
사람을 만나서 사랑한 기억,
일을 만나서 피하지 않았던 선택
그에 대해 후회를 안 했다면
물론 나는 거짓말 하는 중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떠냐.
그들을 나는 전면적으로 만났고
-과장과 무리들의 속내를 다 알게 됐고
‘침묵의 나선 이론’(다수의 눈치를 보고 소수 의견이 줄어드는 현상, “자기 객관화 수업”, 모기룡, 132쪽)도
현장에서 몸소 겪었으니까-
그 결과로 ‘생채기‘ 정도라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대규모 인생 실패를 겪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이렇게 생각이 미치고 나니
그들이 나를 쓰러뜨렸다고
별로 힘도 들지 않더라고
떠벌이는 동안,
그들이 입힌 상처가
나는 이제 더이상 창피하지 않다.
무기수들이 특별사면으로 감형시켜
가석방을 주면 몹시 불안해 한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곳, 적응한 감방과는 완전히 다른
바깥 세상과의 온도 차, 생각 차, 생활방식 차
이런 모든 것이 무서울 것 같다.
이렇게 감방에 있는 사람이 밖에 나가면
꿈 속에서 감방을 만날 지도 모른다.
나는 꿈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아주 머나먼 곳으로 떠났다, 심리적으로.
이게 진짜 행복한 건지는 모르겠다.
일을 다시 잡아야 할까? 를
생각하는 찰나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곧이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현재의 나에게는,
지나가다 내 손을 잡고
“식사하셨어요?",
"바깥 햇볕이 따가워지니
장비를 마련하시는 게 어때요?"
라고 푸근히 말을 건네는,
웃으며 다가오는 현실의 누군가들이 있다.
그런데 나에게만 보인다.
내 눈에는...
현실에서 오늘 함께 한 그 사람들 뒤로,
과거의 내가 만났던, 아니 만나지 말아야 했던
그들의 환영이 오버랩되고 있다.
그로 인해 나는 자꾸 더 머나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
그 중에는 다수의 판정 때문에
응당 가져야 할 존재감을 빼앗긴 나를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사내에서 오가다 마주칠 때마다
눈을 내리깔던
그런 중년도 있었다.
일주일에 몇 일씩이나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다.
이게 진짜,
이렇게 도망쳐서 사는 것이
진짜 행복한 건지
나는 간간이 생각해 보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아직은 도망칠 때라는 것이다.
잡히지 말고 잘.
아프지 말고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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