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설레고 싶다.
조기 퇴직, 희망 퇴직 하면 어떤 느낌이 온다.
공무원은 명예 퇴직이 있다.
‘퇴직 사회’랄까.
퇴직 후 인생 2막을 여는 일이
관심일 만큼 변화된 우리 사회.
이젠 퇴직 전부터 자기 인생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틀을 갖고서는 자신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봐 온
‘눈’ 자체를 바꿔야 한다.
아니면 단지 머무를 뿐, 나아가질 못한다.
며칠간 고민했지만,
했던 일 또 한다는 것은 의미 없다.
‘악연의 알고리즘’에 찍히다
G가 자꾸 생각나는 몇일 간을 보냈기에
G 얘기를 해 보겠다.
G. 하면 떠오르는, 그가 한 말이 있다.
나한테, 면전에서,
그러니까 나를 바라보면서
G는 말했다.
"나는 성대리가 웃는 게 싫어!"라고 했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정말 안 맞고 정말 부정적이라고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결재선을 뒤틀고 해서
특히 내게 부정적이라고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웃는 게 싫다니.
그게 왜.
그게 G와 무슨 상관이지?
한참 지난 후 정말 빵 터지게 웃었다.
“별 게 다 싫구만.”이라고 웃었을 때
나는 그 다음에 G가 내게 할 일의 엄청난 결과를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도저히 내가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큰 G의 악감정은
내게 기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G 본인이
매일처럼 물을 주고 말을 걸어주면서 키워 가던
‘원한'이 있었고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감정이
적어도 일을 추진하는 데에서는
전면부에 등장하지 않길 바랬던 나는,
"제가 어디가 마음에 안 드세요?,
제가 고칠 수 있으면 고치려고 하니까
알려 주시면 안돼요?"
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거기까지 가 봤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지금에 오기까지 G 같은 악연의 알고리즘에 빠져
익사할 뻔 한 나로선,
한 가지 남는 Thanks가 있다.
'G가 내 가족은 아니었다.'
안 보고 산다. 감사하다.
나라고 G가 좋았겠는가 말이다.
나를 두고 왜 낮은 자존감이냐, 자신감 없냐 해도
별반 높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그렇다.(so so)
나는 일을 앞에 두고
자신의 무언가를 거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걸고
무슨 일처리 끝에라도 '찬양가'를 듣고 싶어서
업무만 처리하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번거롭게도 톡방에 다시 일처리 사실을 올려서
또 다들 슬슬 가려운 델 긁어주듯
답을 올리게 하고야 말았다.
"최고에요"
"고생하셨어요"
"멋져요”
왜 '일'에다 자신을 걸지?
우리는 공공이고
양질의 삶을 누릴 기회를 만들어 제공하는
맡은 바 일을 당연하게도 해야 하는 쪽일 뿐인데?
연거푸 내려온 기관의 수장들이
입이 마르도록 추켜세운 단어가 있다.
바로 '시스템'으로 한다라는 것.
그렇게 말하는 기관장들의 의미 부여가
뭐였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기 전에
‘시스템’이 만들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실제 현장에서 자신이
조직 내 구성원을 차례차례 설득하고
하나의 시스템을 탄생시키는 데
내가 아는 ‘시스템'이란,
G가 아닌 제2, 제3의 후임자가 와도
바로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업무 숙련도, 노하우 상관없이
일의 요체, 핵심을 남겨 놓고 떠나는 것이다.
순서, 흐름도 중요할 테고
나아가서 일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이
왜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것을 받아들여 가공하고 첨가하여 재창조하는 것은 다음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그게 시스템'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국가기밀이라고,
비밀로 간직하고
중간중간 곁눈질당한다 해서 견제하고
각종 컨설팅이나 지도 조언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해도
비토는 커녕, 어떻게도 막지 못하는 조직,
이 조직에 무슨 생명력이 있을까.
나는 G와 같은 꼰대들이 끝까지 가는
이 조직에 오늘도 남아 있다.
공무원의 '숨'(Breath)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 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지나치게 길다.
혁신이 없는 조직이
혁신 없이도 생명 연장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나의 숨은 길지 않았으면 한다. 노력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한단들
나는 어느덧 승진하고 출세하려는 위인이 되어 있었다.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동양 전통이라면,
한국의 오랜 가치라면,
이 사회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면서
‘탑 오브 더 탑‘이 되지 못한 한을 남한테 푼다.
즉 누가 잘 나가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인데
그렇담 자신들의 욕구에 솔직하면 될 것을
그건 또 아니란다.
청렴과 무념 같은 시늉만 하지 말고.?
그들은 내 앞길이 막혀서
내가 병이 났다고 할 거다
사촌이 땅 사면 나는 그 병 말이다.
정작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그게 나라서 가능한 소리일지 모른다.-
그게 나를 재발을 포함, 오래 아프게 했다.
내가 행여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내가 지금 온 힘을 다 해서
나를 가두고 있는 모든 틀을 바꾸려고 하지만
해 보니까 참 쉽지 않다.
(‘쉽지 않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랑 업무협의를 하는 중간에도 ‘쉽지 않’다고 말했던
‘도전자'가 생각나서
누군가 이 유행어를 읊조리면
나는 사실 깜짝깜짝 놀랐었다. 얼마 전까지.
이젠 내가 '쉽지 않'다라는 말을 한다. )
하여튼 나는 사람을 가리지 못한 케이스가 맞다.
이유는, 그저 사람이 좋았다.
애든 어른이든
한 가지 장점이 있고 열 가지 단점이 있을 수 있는데
‘한 가지 장점만 보자‘고 생각했다.
그건 좋아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직장생활에서
사람을 가려서 만날 계제가 못 된다.
그러니까 그냥
주어지면 만나야 하고
나는 G가 그토록 싫어했던 웃음을 웃으며
일로써 사람들과 만났다.
하나의 장점은 있으려니 했다.
나머지는 ‘그러려니...’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의 장점도 찾지 못한
많은 사례가 있었고, 덕분에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일을 해서 좋아질 결과들을 떠올리면 설렜다.
일의 결과로 수혜자들이 나오고
그들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나도 행복할 것 같았다.
이런 말이 G들을 더 격앙케 하려니, 알지만,
이젠 나를 견제하거나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나를 바꾸는 일이 그에 따라야 한다면
잘 해 보려 한다.
때가 오면 내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G들보다 나의 때가 빨랐으면 한다.
‘퇴직, 넌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