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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l 03. 2024

55. 직장인에게 ‘워라밸’이란

- 원래는 없는 것.


직장인에게 '워라밸'이란 과연 필요한 걸까.

직장인이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직장 생활을 영위할까?

'월급'은 곧 생계를 이어가게 하는 '파이프라인'이고

따라서 월급이 끊기면 다들 직장을 안 나올 것이다.


월급은 계속 들어와야 하고

그런 전제에서 '워라밸'이라는 새로운 시점이 떠오른 지도 한참이 지났다. 가히 열풍이었다.


'성대리'는 일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고

내 일과 내 삶의 불균형은 시급하지 않았던 때였다.

우리 팀에게는 아직 '워라밸'이라는 게 열풍인지 뭔지 그닥 와 닿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이 여러 번 바뀌었다.

과거지사를 돌아보면

컴퓨터 때문에 한 번, 스마트폰 때문에 다시 한 번,

그렇게 세상이 격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알다시피 AI, 로봇이 바꿔 놓는 중이다.



일 복 터진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만드는 면도



예전처럼 눈치를 슬슬 보다가

정 안 되면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하는 게 아니다.

퇴근 시각이 되면 요즘은

별 인사도 없이 뿔뿔이 들어간다.


직장 생활은 사실 하기 나름이다.


다들 '내 일'이 아니라고 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작은 뒷청소와 아주 미세한 세팅까지도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일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일감이 잘 보인다.

가족이 있으면 가족에게서 불평을 듣게 될 지경이다.


유연근무제라든가, 유급 휴가 등의 각종 제도적 지원이 있었고 업무 강도를 최대한 낮추었으며

퇴근 후 SNS를 통한 업무 지시도 옛말이 되었다.


그런데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아직도 과로하고 잦은 야근을 하면서

직장에 올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많다. ‘K'처럼.

그는 현재 업무 성과가 가장 좋고 내가 보았을 때 직무 수행 능력이 동 연배에 비해 뛰어나다.


'K'는 이런 말을 한다. 계속 걸려 오는 전화에 응대, 문제해결 솔루션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일상,

근무 시간은 물론 짧은 며칠 간의 여름 휴가를 갔을 때에도 여러 상의에 시달렸던 일을 말하곤,

거기서 'K'는 '내가 이렇게까지 일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런 'K'를 지켜 보는 내 마음은 복잡하다.

'K'에게 일이 몰려 있음이 아주 잘 보인다.

'성대리'가 과거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았기 때문에.


'K'에게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지만 하지는 않았다.

'K' 스스로가 답을 알고 있으니, 찾기만 하면 될 것이다.

사람은 부조화가 나타나면

인체에서나 사회 생활에서나 반드시

조화와 균형을 이루려고 조절점을 찾게 된다.


스스로가 그것을 하지 못하면

인생이 나에게 그것을 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일이 있다.

'성대리'처럼 완전히 바닥을 내려칠 때까지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쩌면 'K'의 고민은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다는 것이 자신의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성대리'가 조직에서 지워진 마당에서

뒤에 오고 있는 'K'와 같은 열정적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겪게 될 또 다른 불균형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경쟁'이 치열하면서 일반화되어 있었던 과거의 조직 환경이 끝나 버린 것이다.

완벽하게 일을 맞춰 놓고 퇴근하려는 사람들은

얼마간 있다.

하지만 과거 시대의 직장인들이

‘워라밸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경쟁적으로 야근을 하고

치열하게 째려 보면서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쌓던 여건이 무너진 현실은 사람들의 생각을 돌려 놓았다.


나에게는 'K'를 계속 지켜 볼 기회가 있을 수 있다.

일에 빠진 'K'를 말이다.

한 사람의 'K'

열 명이나 스무 명의, 열정이 없고 완벽하지 않아도

퇴근 이후의 삶에 더 큰 비중을 두거나,

그것마저도 뜨뜻미지근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


'K'는 쉽사리 내려 놓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이

무섭도록 강한 '내 책임감'이라는 사실을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들과

그런 'K'를 강도 높게 일하게 만드는 책임관들,

그리고 승진이라는 오래된 알고리즘이

 세 개의 축이 되어 'K'를 버티고 있다.


어떻게 잘 아느냐고?

그것이 '성대리'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성대리'가 떠난 자리에 여러 명의 'K'들이 오고 있다.

'K'들은 자기 계발도 없이, 그 흔한 재테크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 갈 것이다.

물론 동료들의 비협조와 조직의 잘못된 스트레스 관리만 아니라면 '성대리'처럼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에워싼 것이 사실은 자신만의 책임감이었다는 사실은 계속해서 알 듯 모를 듯 할 것이다.

일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고

성과에 자신의 이름을 라벨처럼 붙이면서

급기야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책임감이 사실은 자기 자신만 힘들게 한다.



소진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 일한 사람은!



관망만 하던 사람이 위로 올라올 때

소진되 버린 사람은 이미 가라앉았다.



한 두 사람의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 외에는

‘내 일 아니야~'라고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사원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앞으로는? 모르지만, 조직 문화가 바뀌기는 쉽지 않다.

‘보편적인 직업 능력’이라는 게 있지도 않거니와

‘시간 주권(개인이 자유롭게 시간 배분을 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업무 시간 내외에서 다 보장받길

다들 원하는 직무 환경이다.


원래 일은 몰리게 되어 있고

원래 일의 총량은 그렇게나 많다.


누군가가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일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겠는가.

모두가 전화를 받지 않는데 한 명이 전화를 받으면

그 사람이 해결까지 해야 한다.

‘워라밸’은 원래 없다.

그런 것이다.


내가 만약 ‘k'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있다면

“기존에 보고 듣고 생각해 온 대로 선택하지 말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다시 격변을 맞을 것이고

거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

삶을 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다라고 말이다.


‘성대리’는 자주, 그리고 많이,

남의 시선, 주위의 칭찬과 상사의 인정에 휘둘렸는데

드디어 54번째 글(아래)을 썼을 무렵부터

마음이 아주 느긋해짐을 느꼈다.


https://brunch.co.kr/@dff3dd9acfae4f7/54


더이상 어떤 말도직접 할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또 불안하지만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맡은 바

프로젝트를 잘 추진해 나갈 ‘K'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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