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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n 30. 2024

54. 선수와 고수의 차이란

- 실로 한 끗.


이번 주엔 많이 괴로와했다.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고

이랬었더라면, 저랬었더라면 하고

지나버린 일을 마치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뒤적이느라 심란했다.


그런 끝에 깨달음이 왔다.





시켜서 하는 일의 한계



시켜야 일을 한다.

먼저 일을 가져다 놓고 잠깐만 생긱하면

현황이 어떠니까 계획과 방향은 어때야 한다고

답이 나오고, 필요시엔 회의에 붙일 수 있다.

그런데 그저 생각 없이 기계적이다.


시키면 뭐라고 한다.

삼요’(3요: 뭘요? 제가요? 왜요?)는

상대방이 대단해 보이지 않거나

싸움을 벌여도 자신이 불리하지는 않겠으면

봐 가며 실컷 마음껏 날려 준다.


일을 시키면, 뒤에 가서 자기한테 시켰다고,

일을 좀 만들어서 주면, 뒤에 가서 뺏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일할 맛이 하나도 안 난다.

사람이 기분이 좋고 하는 일이 즐거워야지 되는 건데, 그래야 사는 것 같이 사는 건데,

막히고 막히는 일을 통 밀고 나갈 수가 없다.


시켜서 하는 일은,

사람이 몸으로 일을 하되

온 몸의 힘을 다해서 하는

‘혼신의 일’과는 아예 다르다.

일이 자꾸 끊어지고

사람과 사람, 주변과 주변, 일과 일, 칸막이를

넘나들 수가 없다. 단절된다.

나는 답답했다.


내가 물건을 한 개 팔면

한 개만큼의 비용을 빼고 수익이 난다.

한 개의 상가를 임대하면

비용 제하고 임대료에서 수익을 낸다.

한 개씩 하면 그저 그 뿐이다.


일도 인생도 복리처럼 해야 잘 풀리고

급기야 불어난다.

원금(1+이자율)에 투자년수의 승수만큼 불려서

우리는 복리로 눈덩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눈썰미도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행동 반경을 미리 예상해서

먼저 가서 기다리다가 협의점을 발견해서

조정력도 발휘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치와 코치가 없다면,

재미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1+1이 2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3도 되고 5도 되고 백을 넘을 수도 있다.

일도 서로 돕고 같이 했으면 얼마나 잘 돌아갔을까.


그렇기는 한데, 그렇게만 된다면 좀 좋을까마는!


일에 대한 이해력이 높고 주도성이 강한 사람은

군데군데에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는 몸만 망가진다.





이제 두고 가자.

자유롭게 가볍게 날자.



선수들이 곳곳에 많다. 결국 나만 잘 한 게 아니다.

노력도 많이, 시간도 많이 들였다 보니

이제 내 분야에서 선수가 선수를 알아볼 경지가 온다.

선수들끼리 만나면 바로 붙으려 하기 전에

눈치껏 긴장을 높여서 조금 더 힘을 쓰는 식이다.


고수는 뭘까.

내가 이번 주에 지난 일이

다시 마음을 쓸고 가서 혼이 나다가

문득 그 쳐진 마음을 뚫고 나온 생각이

그것이었다.


아! 고수가 되어야겠다!


내가 나를 가두려 하지 말고

내가 나를 자꾸 힘들게 볶지 말아라.

그러면 못 살아.

말로는 일을 놓았다고 하고

정신으로는 일 부자 시절을 트래킹하면서

어떻게 자유롭게 삶을 재구조화하겠어?


‘성대리’는 이미 선수야. 그걸로 끝났을 뿐이니까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하고

과거 회상하고 상처 덧나게스리 행동 말아라.

과장이 안전 마진을 다 찾아먹고 퇴직을 하든 말든지

마음 복닥이며 자꾸 제자리걸음 해선 안 돼.


‘성대리’가 하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일’은 여기엔 없다.

일을 해서 반듯해지면 좋을 것 같았지만

그래서 매달렸지만,

돌아온 것은 ‘너만 이상해’라는 질시와 따돌림 뿐.


어서 가자. 가서 살 날이 길다. 할 일이 많다.

그러려면 과거 따위, 해도 되지 않았던 시절을

내려 놓자. 내려 놓고 가자.


이것이 답이다. 잘 했든 잘못 했든

지금 와서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

천 년을 한숨 지어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의 끈질긴 유전을

벗어날 수 없다. 시간 뺏긴다.


훌훌 가자. 결국 고수와 선수의 차이란,

한 끗! 내려 놓고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끝났고

나는 다 벌었으니(고생도, 병치레도, 욕도),

너희도 벌 만큼 벌어라.


나는 하산한다. 내려가서 볼 일 없을 거다.

여기서 끝!


깨달음이 왔고

고민하던 한 주 간 내 마음이

나를 가두었음을 알았다.

그렇게 살면 못 산다는 것도...

몹시 편해지고 또 자유로움을 느껴서

하는 일이 잘 됐다.

역시 마음 편한 것이 최고의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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