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감의 결여가 컸다.
휴대폰이 계속 울려서 진동으로 둘 수가 없다.
창을 아래로 눕혀 놓지 않으면 액정이 연속해 깜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는 바닥에 닿게 폰을 뉘어 둔다.
나는 멤버십이다. 이게 무슨 자기 정의냐 하면 공부방이라고 하자. 혼자 공부하다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단체 방에 들어가겠다. 방장은 뚜렷한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방에서 질의에 응답해 주고 톡으로 강의도 한다. 대개 십 여 년간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리드해 본 경력이 있다.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과정을 지나면 어느덧 내가 유료회원이 되어 있다. 그걸 멤버십이라고 부른다.
방장은 강사가 되어 유료 결제를 받는 족집게 강의를 줌이나 유튜브 유알엘을 보내어 돌린다.
하루 종일 거기서 헤매다 보면 잠들녁이 된다.
실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날은 저녁 시간을
비우고 기다린다. 강의장을 빌렸는데 자리가 안 찰까 봐 강사가 “살려 주세요!” 히면 현장 강의도 가서
자리를 채운다. 나는 여기까지가 되는 것 같다.
그로 인해서 수익을 낸 사람들은 단체 톡방에서
가장 열심이다.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면서 말이다.
방장이 나를 아는 것 같지가 않다. 알게 할 방법은 ‘맨 앞에 가서 앉기’이지만, 그리고 ‘댓글과 좋아요/ 구독’이지만 실은 보고 듣고 읽기만 해도 너무 바쁘다.
그로 인해 시간이 꽉 짜인 생활을 하고 분위기를 알게 된 것은 덤이다. 일반 방과 멤버십 방을 모두 들어가
보면 이번 분기가 끝났을 때 다시 유료 결제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그만큼 혜택이 있고 차이가 나는 것이다. 방장을 보좌하는 부방장이 여러 명 있어서
간단히 문의할 때는 그를 거치면 된다. 그들은 방장과 나누는 수익 구조가 얼마쯤 될까 궁금했다.
내가 실제 들어가 보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모이고
모은 사람들을 나눠서 관리하는 이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시장의 분위기를 이 단체방의 분위기에서부터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사람들의 마음이 활활 타오르면 차려진 식탁이 삽시간에 비워지듯 빨리 캐치하고 바로 행동한 사람들이 이 구역의 진짜 멤버십이다.
내가 강사라면 어떤 강의를 할까 생각해 봤다. 결국은 실제 터득하고 성공한 사례를 내는 게 어떤 강의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게 하는 것 같았다. ‘확실한 내 편’을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선생님’들은 그 점을 잘 간파하고 잘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반기를 바쁘게 보내는 동안 ‘내 일’을 하고
있지 못했다는 결론이 섰다. 그 방에 들어가게 된 경위 자체가 나의 관심사였고 내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바쁘게 쫓아 다니다 보니 시간을 잡아 먹혔다. 눈팅만 해도 내 가용한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들었다. 방장은 내가 열혈 회원이 되기 전에는
어차피 나를 모른다. 내가 멤버십 회비를 내는 한 질문에는 답해 줄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질문이 내게서 사라졌다. 스스로 활동하고
스스로 메이드 되지 못한 데이터는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나는 편하려고 한 것 같다. 좀 빨리 가는 길을 찾을 때 통상 단체를 들어간다. 혼자 하기가 힘들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분위기만 본 것이었는데 어느덧 회비가 무한 결제되게 생겼다. 도움도 될 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체방만 드나드는 것을 발견했다. 방장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멤버십이 많다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돈이 되는 한, 개의할 일은 아니다. 숫자를 늘리는 게 당면 목표인 그가 일일이 사정을 봐 주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다.
실제로 한 군데에서 계속 회비를 낼 것인지 물어 왔다. 액수는 가장 컸다. 나는 하루 있다가 그곳을 나왔다.
사람이 많이 거쳐 간 그곳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돈을 내고 내가 한 일은 힘이 빠져 버린 것이다. 강사는 화려했고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이처럼 쉬울 수가 없다는 듯 해 내고 있었다. 마침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거길 나왔다. 당연히 붙잡을 사람은 없었다.
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다 내려놓았을 때 그 끝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소송에 들어갔든지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완전히 다른 나를 보게 된다. 소송을 통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들 앞에서 내 전신을 다 보이는 것 같은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이 소송이 끝나기만을 바라게 될 수 있다.
그래도 자신이 시작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듯 주체가 나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 만날 더
좋은 사람을 위해 지금 쉬어간다고 생각, 자신에게
일어난 낯선 ‘소송’의 과정을 가야 한다.
처음을 기억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면 끝은 올 것이다.
내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지는 오래다.
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파악할 때와 아예 몰랐을 때는 대처 자체가 달랐다.
내가 과장이 나에 대한 따돌림을 시작할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느끼고 나에게 일어날 일이
자못 심각할 줄 썩 좋지 않은 예감을 했던 것도
과장을 어느 정도 안 다음이었다.
내가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중 쉬운 길을 잘 택한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알게 된 것 같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저 쉽게 묻어 가려고 하다간 남에게 동원되거나
하나의 숫자에만 불과하게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들 똑똑하다. 나만큼 아니 그 이상.
그들과 거리를 둔다는 것이 망설여지는 까닭은
내가 스스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자신감의 결여에 있다. 나는 돈과 시간을 남에게 내어 주고 나의 행동을
자꾸 미루고 있었다. 지연시키는 것이다.
만나면 헤어질 때가 반드시 오는데 사람과의 관계를 지체시키고 있다면 준비가 될 필요가 있다.
나 혼자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감이란 대체로 아주 멀리 가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해 보고 나서 다시 단체방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만나야: 오늘은 이것이 결론이다.
내 일을 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