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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Oct 06. 2024

82. 바보가 된 썰~

- 오늘 풀고 정말 잊자.


지난 발행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이

어떻게 나에게 경제적 손실을 일으켰는지 풀어 냈다면.

오늘은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못 푼 썰이 되겠다.




그 날들: 주력이 되었던 내가 쏙 빠지게 된 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해당 기관에 근무한 이력이 없었다.

하지만 정확히 18명이었던 그들 근무자들은 성장 환경부터 서로 닿아 있었다. 업무적 성장과 각자 인생의 성장이.


그들은 내가 나가든지 들어오든지 중요한 게 아니고

늘 그들끼리 마주보고 일해야 했다.

자기들이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이 집단의 결정에 의해

한 번 밀어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날부터 도외시될 수 밖에 없는

외부인이었다.


나의 요구와 다른 의견을 만약 18명이 가진다면

그 조율은 과장이나 'I'가 해야 했다.

그러나 과장은 상대방을 배려하며 대화하는 능력

날 때부터 결여된 외골수라서,

어떤 다른 입장의 중간에서 ‘조율’을 한다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 했다. 평생 동안 꾸준히 회피한 인물이다.

대신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데에는 용의주도했다.

늘 ‘1등’만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I'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이

자신의 힘이라고 여긴 한계가 역력했고

어려운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듯 하루 빨리

자신감을 잃어갔다.

관리/감독 시스템은 당초에 허술했는데

이 때에 아예 망가졌다.


그럼 북새통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뚜껑이 날아가는 폭발‘에 대응하는가.


일단 18명이 ‘캐도 캐도 고구마 줄기’처럼 복제된 행동 패턴을 보였다.

내게는 메신저로만 일을 상의했고

아무도 내 자리에 다가오지 않았다.

엊저녁 업무 협의에서 생각을 터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출근해 보면 18명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서

내게는 아는 체도 않는 일이 반복됐다.

거기에는 나이도, 연차도, 업무 근접도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냥 나는 혼자 일했고

섬처럼 지냈다.


대화를 굶고, 즐기던 커피를 굶고,

알아서 하라는 듯 그들끼리 식사하러 나간 뒤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다.




하나의 기관에는 다양한 종사자들이 혼재한다.사무실에 묘한 공기가 흐르면 모두가 그 공기를 냄새 맡게 된다.


메인인 ‘18(명) 부대’가

작정하고 내게 등을 돌리는 일련의 과정은

과장의 수상한 행동과 상승 곡선을 같이 했다.


왜냐 하면 모두가 극단의 이기주의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선상에서

비리도 함께,

무절제한 낭비와 실효성 없는 자기 복제식 업무 행태를 서로 눈 감았기 때문이다.


위험 수위를 넘어선 어떤 일탈도 집단에서

자행하면 안전한 범주로 오인된다.


결국 ‘너만 없으면 여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하는 손절과 철통 칸막이는

여타의 직원, 고용인들에게 스며들어 갔다.

결과적으로 모든 소속 구성원이

내가 왕따되었음을 인지했고 똑같이 나를 멀리하게

되었다.


어제까지 “OO님”이라는 호칭으로 대했던 사람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했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언제 어떻게 이 곳을 떠나야 할 것인지

그것을 스스로 모색하여야 하게끔

‘작위’ 당했다.


모두가 성인으로 이루어진 직장이라는 집단에서

부작위“ 의무도 위반되어지지 않지만

“작위” 책임도 이행되지 않는다.


내 말은, 성인들이 따돌림을 할 때는

증거 없이, 굶겨 죽이는 방법을 사용하지

미성숙한 아이들이 대놓고 때려 죽이겠다고 엉켜서

흔적을 남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모두가 시험을 쳐서 들어왔고

과장처럼 시험을 잘 본 사람들이었다.

직업적으로 증거주의에 강했고

책임질 일은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이 만연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기나긴 직장 내 일과를 버텼다.

스트레스가 체내에 들어왔는데

내가 왕따인가 하는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외부에 내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또 호소할 데도 없어서

안 그런 듯 지내다 보니

몸 속에 독소가 퍼졌고

자율신경계가 교란되 버렸다.

나중에 다 앓아 보니 그런 판단이 들었다.




개중엔 정말 신입이고 초짜인 ‘18명(부대)’ 멤버

있었다.

이름처럼 착하기만 할 줄 알았던.


일은 나에게 상의하겠지만

자기도 나의 뒷담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수칙을 잘 지켰다.

어린 직원마저도 이렇게 굴었던 이유란

배움이 ‘본 것’에서 연유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편안함을 남의 불편과 절대 바꾸지 않는다

강한 유인이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공무원 사회에서 섣부른 낙인을 불러들일 수 있는 일은 굳이 아는 척 않고 고개 숙일지라도,

외부로 돌거나 강의료를 채우는 데 밝은 그가

굳이 내부 인사에 휘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냉정함으로 치장하고

18명끼리 뜨거운 관계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그들 보기에 외부인인 나는-

-나는 갈 데라도 있지, 자기들은 여기 밖에 없다

사실을 기원으로 한

‘벼랑 끝 전술’이 그들을 유일하게 단합시켰다.-

- 진짜 외부인이 되었다.


협력체제는 여기선 ‘감 떨어진’ 소리다.

그러나 내가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은

TF팀’이었다.


부서간 이기주의를 넘어 단일한 전제 하에 중장기적으로 한 팀을 이루는 일, 그 안에서

고구마 줄기 같은 배제와 부패를 해소하고

진정한 솔루션을 탄생시키는 일은

공무원이라는 사회에선 불가능했다.


우선 자기들이 각자 너무 잘나서 협력이 안 됬고

하다보면 필요한 TF팀장 선임에서 이미 알력과 시샘이 불거져서

또 고구마 줄기를 연출한다.

누구는 이래서 못 해 먹겠다고 트집,

누구는 저래서 배가 아프다고 안티,

결국 조율사가 사라진 무대에서 전투만 현실로 남는다.

누구나 갈등과 충돌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치 못할 때는 과감히 마주쳐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하는데

하이파이브에 주먹질이 날라오면

이건 ‘막 가자!’는 즈음이다.


나는 거기서 집단 이기주의, 무사 안일주의,

경쟁과 ‘나 잘남주의’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비참함을 겪었다.


물 한잔 나누지 못하게 나를 두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기들끼리 요란한 친목을 과시했던 그들이

나란 인물의 목을 댕강 친 후에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로

힘든 썰을 마무리한다.


자기들끼리 다시 분열하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내부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 치라도 나보다 앞서 나가는 이를 봐 줄 수 없고

어떻게 까딱 잘못해서 주도권을 뺏기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는 한,

바람 잘 날은 없다.


때려서 죽여도 죽인 것이지만

굶겨서,

사회적 관계를 고사시켜서

기관을 떠나게 집단이 행사한 것도

죽임이다.

그리고 나 잘남에 빠져 그것을 관리 감독은 하긴 커녕

자신을 위해 묵인하고 편승한 과장도 ‘I'

작위와 부작위의 양면 죄인이 맞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무엇이 미안하고 무엇에 대해 사과할지

특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들었다.


(다시 불러내기 싫은, 취약한 제 모습의 기억이라

꺼내기 힘들었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고구마 줄기(아래 사진)는

어린시절 맛있는 반찬거리가 되어준 기억에도

부득이 소환하여 고구마에게 미안한 마음이에요.)


사진 출처: ‘꿈꾸는 아줌마’ 블로그 https://m.blog.naver.com/kim57742/22351221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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