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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Oct 09. 2024

83. 열심히 하지 않으려면

- 너도나도 다 내려놔야.


결말을 알고 있다면 그 게임은 하지 않을 것이고

결말을 스포당하면 그 영화는 흥미가 반감된다.

소송 진행 중인 나는

마치 결말이 뻔할 것을 짐작이나 한 듯이

요 며칠 왜 김이 확 빠져 버렸을까?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어제의 술을 오늘 해장하면서

차를 운전해 지인을 픽업하려고

도롯가를 시선으로 훑으면서

나는 계속 골똘해 있다.


살면서나, 수학 문제를 풀면서나,

어떤 문제는 풀지 않고 넘어가서

다음 문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모두 엉켜서 하나도 문제를 못 풀게 되는 것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쪼그라드는 용기



소송도 셀프로 하는 분들이 있다.

사실 직접 할 수만 있으면

집이나 땅을 사서 등기를 치고 소유권을 가져오는

셀프 등기의 경우 절약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자기 생활과 분야를

갖고 있다시피 해서 잘 넘나들지 못하고 살아간다.

변호사라든지 법무/세무/감정평가의 ‘사’ 분들이

그래서 조언을 하고 대리를 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열심히 하시는 분들,

도로를 주행하다가 차창만 내려 있을 뿐인데

그 사이로 이미 ‘멋짐’을 방출하시는 분들이

세상에는 진짜로 존재한다.

나는 나의 ‘업계’에서 그런 사람에 매우 목 말라 있었다.

나는 좋은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니다.

이 소송을 이끌어 가는 것이 ‘나 자신’이라는 뜻이다.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문득 건강에 적신호가 또 켜지는 거다.

사람의 일이란!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 시그널,

피곤함을 느껴도 굳이 쉬지 않았던

‘성대리’의 병폐 습관들이 드리운 그늘이 크다.

전문의가 말하기를 “너무 피곤하셨을 거”라고.

나는 ‘그렇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어서 ‘인간이 적응하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내가 내 몸을 관리한다고 말하면서는

혹사시키는 것인 줄도 모른다고? 그럴 수 있지.

아프다고 몸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프다고는, 진료를 찾아간 의사가 말해 준다.


충격과 공포’는 처음 진단 때처럼 심하지 않지만

문제는, 당장 내가 넘어가기 어려워 하는 일,

‘재판‘ 과정을 김당하기 어렵다는 심정으로

바로 이행해 버린다는 것.

이제 ‘갓길 주행’의 유혹이 무지막지하게 시작된다.


힘드니까 위축되는 것이다.

아무도 내가 여기까지 아픈 몸 이끌고

변호사 도움까지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혼자 따돌림 당했고

지금은 아예, 그저, 딱 혼자다.


혼자 커버하는 국면의 리스크는 사실 하나다.

아무도 모르겠기에

나 혼자 접으면 된다는 유혹!

아 얼마나 좋을까? 편할까?‘ 하는 생각들이 밀려온다.





저 못 하겠어요



인원이 많다 보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규모가 지금의 소속기관과 유사한 기관에서

연속해서 근무했고 근무한 지 한두달 만에

기관 내외를 속속들이 알았다.

모르는  게 없었다.

그렇담 현재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관심을 끊었다.


첫째는 아프니까 끊었고

둘째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 ‘포기가 됐으니까’.

아침에 출근하면 모두 눈인사를 나누고

“굿모닝!”을 열었던 날들이 과거가 됐고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내 마음 속에 아직도 ‘그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업계 구성원의 속성을 꿰뚫게 된 일이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내 본성을 붙들어맸다.


아침에 조용히 나가 메신저를 확인한 후

급한 업무 연락이 없으면- 대개는 없다.-

개인 관심사를 하나하나 도장깨기를 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시간은 후다닥 간다.

뒤도 돌아다 보질 않고 퇴근한다.


옆자리건 앞자리건

그도 내게, 나도 그에게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

옆자리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다른 과 사람을 만난 듯이

그제서야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어떤가요.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가요?

(물론 나 혼자 생활하는 거니까 잘 잘못은 없다.

그러므로 시비 붙으려는 사람도 없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한다.

(다음 직장이 생긴다면 모르지만 여긴 어림없지.)


믿고 거른 지가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면서

자꾸 더 거르면 나만 손해인 지점이 턱 앞에 왔다.

내가 재판을 부탁하곤

변호사를 또 거르려고 궁상을 떨어 본다.

“못 하겠어요.” 하려고.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판사도 공무원일까?



힘들 것 같아서 도망치는 데는 한정이 없다.

자꾸 도망쳤더니 이제는 갈 데도 별로 없다.


아프면 병원을, 운동하려면 체육관을 가면 된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일에 유능해진 반면

사람을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드는 과정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판사도 공무원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미리 좌절감부터 맛본다.

그저 아는 공무원이나 한 명 더 추가하려는 생각은

일절 없는 나다.


변호사가 메일로 보낸 증거 자료 요청에는

이런 말이 포함되어 있다.

“ 아무런 입증 자료도 제출하지 못한다면

법원은 단칼에 우리의 주장을 기각해 버릴 것입니다.”


나는 내 몸 상태가 지금에 이르게 영향을 끼친 일들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주장은 주장일 뿐’, 사실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재판주의를 알고도

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와 한 배에 탔다. 그리고

실패할 거라는, 사실 인정이 허용되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우려가 현실이 될까 봐

지금 떨고 있다.


마침 무리해선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옳다구나.’ 해서,

그 어떤 나의 ‘주장’도

단 한장의 사진, 단 일 분의 전화녹음이 아니면

거짓말로 판단, 기각될 것이라는 언급에

그만 기가 죽어 버려서


가야 할 길을 다 가지 않으려고 했다.

‘내’ 재판이고 ’내‘가 열심히 뛰어야 함에도

쫄아 버린 나.

나의 모든 것을 걸 것까진 아닐지 몰라도

‘내가 사라진 재판’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 열심히 대응하려고 했다면

내가 살았던 시간을 내가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면

가야 할 길을 다 가야만 한다.

조금 더 지치고 힘든 시간이 되더라도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을

승소하지 못할 까봐 접어버리는 식으로 나아간다면

남은 삶에, 나를 믿고 있는 변호사에게

뭐라고 변명하고 둘러댈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라면 ‘그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꾸자꾸 늘어나는 시간의 복리 계산에 의해

남들에게 더 빨리 잊혀질 것이고

나 자신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지금도 이미

굉장히 잊었다. 나는 누구인가를 말이다.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를 설득하고

그가 공부하고 파악한 법의 테두리에서

내가 그동안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잊혀질 두려움)를 한껏 겪으면서 인싸 대열에서 낙오하고

소외에 소외를 거듭 겪으며 전전한 스토리를

나의 ‘증거’와 함께 전달해

판결을 이끌어내는 일을 피할 수가 없게 됐다.


다시 떠올리는 일은 다시 아픈 것과 밀접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다는 데 감사하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그게 최선일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리더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사람의 행동이 동물도, 식물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사사건건 인지하고 인식하여 자기 행동에 반영하는 일- 그게 내가 살기를 원한 세계의 모습이다.


무지 외롭고 나 자신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매번 제일 힘들어 했던, 마음 약했던 나.

증거에 살고 증거에 죽어야 하는 현실 배틀에 흔들린 나를 다잡아야겠다.


이 싸움은 도대체가 피할 수가 없다.그런데도

그걸 피하려고 드는 순간이 없다면 거짓말일 게다.

변호사가 나를 버리는 일이 일어나면 어떻겠니?

그건 물어볼 것도 없지.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

내 인생을, 세상을 아름답게 할 테지.



손에 있는 물기는 화분에게 주라는 말에 심쿵!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의 마음처럼 전광판이 깜박인다.
흔들리면서 나아가는 것이리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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