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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도영 Mar 28. 2023

팬데믹, 그리고 다시 도전

'창조적 파괴' 도전기 - 4. Covid-19, 그리고 또 다른 창업

#나의기록 #에세이



 2019년 말부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Covid-19 팬데믹 발생으로 많은 기업들이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고 우리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예정됐던 상장사의 투자 집행도 취소되면서 연쇄적으로 S사에 납입하기로 했던 계약금 집행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Covid-19 발생으로 모든 비즈니스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죠.


  예전 한게임 따라잡기로 게임 포털 사업을 진행하다가 개발자의 죽음(과로사)으로 파산하여 재기를 하는데 꼬박 10여 년이 걸렸지만 결국 또 한 번 이렇게 파산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고민을 하던 중에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확산되는 Covid-19을 검사하려면 Covid-19 진단 키트가 많이 사용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진단 키트 시장도 호황을 이룰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죠. 그래서 진단 키트 시장을 조사를 해보니 역시나 제 예상이 적중했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진단 키트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루고 있었고 특히 한국산 진단 키트는 제품의 신뢰성 때문에 매우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발 빠르게 움직여 국내 Covid-19 진단 키트를 생산하는 업체 5곳을 돌며(당시에도 씨젠은 콧대가 높아서 만나 주지를 않더군요.) LOA 계약을 맺고 글로벌 세일즈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팔자에도 없는 무역업을 이렇게 시작하게 되어 www.quarademic.com (Quarantine + pandemic

)을 창업하고 Covid-19 진단키트부터 시작하여 마스크, 니트릴 글로브 등 제품의 글로벌 세일즈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포르투갈에 마스크를 수출하게 됐습니다. 이것도 정부의 마스크 수출 규제 조치로(저는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요. ㅠ) 쉽지 않았지만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스크를 판매해서 얻은 이익으로는 반도체 비즈니스의 계약금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 그때부터 진단키트를 팔아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당시 길거리에 시체가 즐비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에콰도르에 Covid-19 진단키트 100만 개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에콰도르인은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남미 특유의 특징이 있어서 진단 키트 실물을 꼭 자기 눈으로 봐야겠다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때 국내 상황은 대구 발 Covid-19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고 하필, 해당 제품 제조사가 대구에 위치해 모두가 가는 것을 꺼려했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제조사에 요청하여 다음 영상처럼 일행들과 함께 텅 빈 KTX를 타고 미팅을 하러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모든 확인 작업을 마치고 에콰도르 바이어와의 계약서에 서명까지 마무리한 다음 이제 계약금 입금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제가 하는 일이 쉽게 되면 재미없죠.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에콰도르도 정쟁이 심한 상태였는데, 마침 정치권의 분쟁으로 수출하기로 됐던 국산 진단 키트에 대해 에콰도르 집권 세력 반대파(야당?)가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언론을 조작해 해당 한국산 제품은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가짜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퍼져 결국 수출 계약이 파기되었습니다.

 한편 반도체 제조를 맡은 S사에서는 제조 공정 라인을 저 때문에 비워뒀는데 제가 계약금 납입을 제때 못하는 바람에 라인을 놀리게 되었고 생산하지 못해서 발생한 그 피해 금액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되어 1차 벤더를 통해 제게 소송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 되어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사생결단의 결심으로 Covid-19 진단 키트 세일즈를 위해 유럽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 코로나가 유럽에서 매우 확산되는 시기였지만 저는 지난 대구 때의 상황처럼 이것저것 따질 경황이 없어서 죽음을 무릅쓰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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