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저 함께 할 수 있음에.
그녀와 나는 자금난으로 폭풍같이 흔들리는 회사의 풍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한 계절을 함께 겪어냈다.
매일같이 미지급금은 언제 줄 수 있냐는 거래처들의 전화를 받으며 '빚쟁이'란 기분이 들었던 날에도, 급여 지급일이 늦어지면서 나에게 성화하는 직원분들을 보며 속이 답답해지던 날에도, 아무 계획 없이 '우선 기다려보자'라는 무책임한 경영진들의 태도에 화가 났을 때에도 나는 그녀와 함께였기에 풍랑 위를 꿋꿋이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을 뒤로한 채, 마치 허물없이 지내는 친언니와 친동생 사이처럼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매일 아침, 당연하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반갑게 인사하고, 어느 날은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으며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싫어졌을 때 점심시간의 산책으로 함께 분노를 풀었고, 또 다른 날에는 별 거 아닌 이야기를 하며 고요한 사무실에서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혼자 많은 업무량을 견디며 그저 오랜 시간 동안 차가운 겨울바람에서 홀로 서있었던 것만 같았던 나의 회사생활은 그녀를 만난 후, 추위 끝에 만난 봄바람처럼 그렇게도 참 따스했다.
소중하고도 또 소중한 그 따스함을 받은 나는 그녀에게 더 큰 따뜻함으로 선물해주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하라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녀에게 힘을 얻은 만큼 나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급여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나보다는 그녀의 급여를 최대한 먼저 지급할 수 있도록 했고, 자격증 시험이 있다던 그녀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소소한 간식들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악조건인 회사상황에서도 우리는 잘 견디고 있었고,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누가 뭐라고 한들 지금 잘 견디고 있다는 이 자체가, 함께 버티고 있다는 이 자체가 우리에겐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버팀목이 되었다. 자연스레 서로의 집안 상황과 상세한 내용들까지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파트너 이상의 시너지로 함께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그런 상황이면 이직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직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겠지만 나와 그녀는 서로 다른 회사로 이동해 일하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기 때문에.
회사가 지금 잠깐의 풍랑을 거치고 있는 과정일 뿐, 부디 조금씩 잠잠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