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그래, 우선 해보자.
그녀와 회사생활을 함께한 지도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시간은 어느새 연말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그 해 따라 유난히 연말이 연말 같지 않았던 느낌이 강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25년 1월 1일부로 조직개편을 시행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회계팀 소속이었던 그녀와 나는 대부분 자금 관련 업무를 진행했었기에 항상 대표님과 소통을 해왔었지만, 새해부터는 오로지 회장님께서 혼자 자금파트를 맡으시며 우리와의 소통을 원하시는 듯했다.
그 소통이라는 것은 기존에는 대표님께서 어느 정도 자금에 관한 업무들을 총괄해 주셨지만, 조직개편이 되면서 대표님은 다른 사업부로 이동하셔야 하기 때문에 회계팀의 총책임자인 내가 자금총괄을 맡아 알아서 자금을 관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그 당시 과장이었던 나와 입사한 지 반년정도 되었던 그녀는 사원의 직위였는데 나를 '차장'으로, 그녀는 '대리'로 대용승진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더 기울어지고 있는 회사에서 내가 그런 책임을 맡으면서까지 이 회사에 다녀야 할까..?’ 라는 생각에 그녀와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과장님, 그건 그냥 과장님한테 책임을 다 떠넘기려고 하는 거잖아요. 회사가 대체 왜 이래요. 정말.."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나는 더 이상의 책임을 떠안기도 싫었고, 끝이 보이는 회사에서 일말의 열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점심시간이 지나고 회장님을 찾아뵈러 갔다.
"회장님, 제가 자금총괄할 정도의 역량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자금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도 없고, 부담스럽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 그리고 내가 하라면 해야지. 어떡할 거야."
회장님의 단호한 말투에 뻥져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가장 고민되었던 건 마지막에 회장님께서 연봉인상은 확실히 반영해 줄 거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 상황을 그녀에게 바로 알렸다.
"찰떡씨, 저는 이 상황이 너무 부담되고, 자신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과장님, 근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연봉 오르면 과장님은 좋은 거죠.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이 어느 정도까지는 커버해 주실 테니까 저는 과장님이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용기를 선물해 주었다.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나는 '내가 이 상황을 너무 피하려고만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고 나서 아닌 것 같거나 힘들다면 그때 회장님과 다시 한번 면담하는 방향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그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나는 회장님께 우선 해보겠다고 보고를 드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또 하나, 하나밖에 없는 팀원인 그녀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업무 환경과 회사를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만들어 가보겠다는 결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