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계속될 우리의 '교집합'

03. 익숙했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by HAM

내 마음의 정답은 ‘용기’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나는 계획형인 사람답게 회사에 사직의사를 언제 보고할지, 이 회사에 언제까지 근무할지, 또 이후 언제까지 쉬어야 할지 등의 나름의 계획을 세워놨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그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내가 느껴왔던 이 회사는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며 성장하는 조직문화가 아닌, 실패를 두려워하고, 모든 일에 책임전가를 하는 분위기였기에 하루라도 빨리 사직의사를 밝히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회계업무를 주로 했었고, 어느 직무보다 예민한 구석이 많았기에 회장님께서 나를 더 엄격하게 대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실수 없이, 그리고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 없이 진솔하게 업무를 진행해 왔지만, 만연하게 혹은 팽배하게 깔려있는 경직된 조직문화를 보며 ‘업무에 대한 모든 비난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바로 느낀 후, 나는 다음 날 출근을 하자마자 회장님을 뵈러 갔다.


나의 자리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회사의 운영상태나 조직문화 등에 대해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그런 말을 한다고 한들 ‘변화’라는 단어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었기에 필요한 말들만 정리해서 보고를 드렸다.



“회장님, 저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왜? 많이 힘들었어?”


“네, 매번 언제 받을지도 모르는 급여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결제를 독촉하는 거래처들의 전화와 나아지지 않는 재정상황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매일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습니다.”


“야, 나도 불안해. 네가 불안하다고 하면 어떡하냐.”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경영자의 입에서 ‘나도 불안하다’ 라니..


‘그만둔다고 말하길 잘했구나’ 싶어 새로운 결정 앞에서 조금은 두려웠던 내 마음은 도리어 편안해졌다.



적격이라고 생각되는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취합해서 회장님께 보고를 드렸지만, 회장님은 1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면접일정에 대한 회신을 주지 않으셨다.


불안해진 나는 회장님을 뵙고, 면접일정을 최대한 빨리 확정지어 달라고 말씀드렸다. 회장님은 깊은 생각에 빠지신 듯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겨우 입을 떼셨다.



“김차장, 도저히 안 되겠냐?”


“네, 지금 이 상태로는 제가 다니기가 너무 힘듭니다.”


”2월 한 달동안 유급휴직 해줄게. 쉬면서 생각 잘해봐. 마음이 바뀌지 않겄어?”


”아닙니다. 그런 조건을 승낙할 마음이었으면 저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드리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오래 다녔던 직원을 마지막으로 붙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나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기에 냉정하리만큼 단호하게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만, 자리로 돌아와 한동안은 멍하게 모니터를 바라봤다. 돌아보니 ‘3년’ 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나의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던 공간의 속도였던 것이다.



내가 열정을 다해 이루었던 시간들,

울고 싶어도 그만두고 싶어도 악착같이 버텨냈던 시간들,

불안한 상황의 연속에서도 그녀와 함께 의지하며 애썼던 숱한 시간들.


그 시간들이 나를 온전하게,

중심을 잡으며 성장할 수 있었던 알찬 속도였다는 것을.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언제나 겁이 나지만, 그동안 성장하고 있었던 나를 믿기에 가능했었던 일이 아닐까.


또 다른 곳에서 부딪히며 성장할 미래의 나를 기다리며 오늘도 응원해 본다.



‘실패하고, 또 넘어져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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