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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Oct 10.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아버지 친구

늘 하시던 말씀이 " 친구는 딱~ 한명만 있으면 된다~" 였다.

그 말씀의 진의를 돌아가신 지 10년도 훨씬 지나 깨닫게 된 이 아들은 새삼 우리 아버지의 현명함에 놀라고 있다.


친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쫒아 나갔던 내 젊은 날이 이제 그리움의 시간이 되어 버린 지금, 오랜 타향살이에 한 명의 친구도 그리운 존재가 되어 아버지 말씀  좀 더 처절하게 느끼는 중이다.

아버지보다 친구는 많지만 마음을 채워줄 친구는 가까이에 있지 않으니...


내 아버지에게는 때가 되면 찾아오시던 친구 한분이 계셨다.

저녁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 오후 4시나 5시쯤 되면 불쑥 찾아오시던 그분은 우리 아버지와는 달리 부산의 작은 직장에서 은퇴를 하시고 아버지에게서 볼 수 없는 멋이 있으신 분이셨다.

오로지 우리 아버지와 어울리시려고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를 아내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매하신 후 가장 먼저 달려오신 곳이 우리 집이었으니, 두 분의 우정은 누가 봐도 절친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동차 때문에 음주에 방해된다고 정작 아버지께서는 차를 가지고 오시는 친구분께 핀잔을 하기 일쑤였고, 이후엔 오히려 우리 아버지께서 더 자주 그분에게로 달려가셨다.

장사뒷전으로 하고 달려 나가게 하시는 그 아버지 친구분을 어머님은 좋아하시지 않았지만 노년엔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가실 정도로 아버지와 그 친구분을 인정하셨다.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신 그분의 장례식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는 한동안 삶의 의욕이 없으셨는지 말수도 줄어드셨고 좋아하시던 약주도 식사 때 한두 잔이 끝이었다.

터놓고 지내던 친구의 부재를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입원한 병원에서 하시던 말씀이 " 여기 ooo가 죽은 병원 아이가? " 라고 하시면서 잠시 고통을 잊으시는 걸 보고 ,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 기억이 난다.

아무리 친해도 같은 병원 같은 장례식장을 이용하시다니...


단 한 명의 친구조차도 만들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굳이 찾아가서 만나지 않아도, 스마트 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 바로 앞에 있는 듯 얼굴을 보며 얘기할 수도 있다.

친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연락이 가능한 SNS 서비스는 오랜만에 접하는 친구의 소식에도 감동이 덜하다.

멀리 있어도 자주 만나지 않아도 친구가 요즘 뭘 하고 지내는지 어느 정도 알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는 한 명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


친구라면 함께 여행도 가고 술도 한잔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슬픈 일이 잊으면 찾아가 안아주기도 하고 만취해서 오바이트하는 등을 두드려 줘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옛 친구가 더 그립다.

오랜 타향살이로 이제 고향이 더 낯설게 되어버린 요즘, 고향 생각이 자주 난다.

고향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 오르는 단어가 바로 친구가 아닐까?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놀던 친구들도 이제 반백이 넘은 나이에 소주보다 말 걸 리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불쑥 친구 찾아 고향으로 한번 가봐야겠다.

걸쭉한 고향 사투리 안주 삼아 소주든 막걸리든 한잔해야 그나마 살 맛이 날 거 같다.

아버지 말씀처럼 한놈이라도 고향에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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